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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세계여행1화) 호주 멜번, 영어 벙어리 첫 해

호주 멜번, 영어 벙어리 첫 해외여행

by 꿈꾸는 유목민

드디어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호주로 이민을 가신 작은 고모가 멜번에 살고 계셨기에, 나의 첫 여행지는 당연히 멜번이었다. 어떻게 해서 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집안 사정이 반짝 좋아졌기에 보내주셨나보다. 어쨌든 대학생이 되었고, 첫 여름방학때 호주로의 여행이라니,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은 국적기였기 때문에 가격이 두세배 비쌌고, 시드니를 경유하는 콴타스 항공표를 끊었다. 캥거루가 그려져있었던 콴타스 에어라인.


이제 가기만 하면 된다. 작은 고모댁에서 40일정도 살 수 있으니, 학원비와 항공료만 가져가면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옆자리에는 반바지 차림의 한 젊은 남자가 탔다 (호주가 겨울인걸 모르나보다) 처음 타는 비행기라 신기하기도하고 설레는 마음에, 옆에 앉은 남자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남자분도 첫 비행인것 같았고, 나처럼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었을 것이다.


족보를 따져보니 내가 다니는 대학의 복학생!

그것도 의상디자인과!

그분은 군대 제대 후

바로 호주에 간다고 했다.

세상은 역시 좁다. 학교 복학생을 비행기 좌석 옆에서 만나다니...


그렇게 비행기에서 만난 대학교 선배님은 본인이 담배를 두갑을 가져왔는데 입국 시에 한갑밖에 못가지고 들어가니, 나에게 한갑을 맡기겠다며 나가서 달라고 부탁하셨다.


지금 기억으로 그 선배님의 최종목적지는 시드니였던것같다. 나는 멜번을 가야해서 비행기 환승을 해야하고, 그 선배님은 시드니에서 아웃해야하는 노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선배님은 나에게 담배를 맡겼을까? 아마도 나를 만날꺼라고 생각했나보다. 물론 나도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좀 우습다.


어쨌든 그렇게 비행기에서 내렸고, 나는 멜번행 비행기에 환승을 해야했다.


환승 대기 시간이 아주 짧았던 걸로 기억한다. 서둘러야했는데, 비행기를 타본적도 없고, 환승을 해본적은 더더욱 없고, 그 당시는 인터넷으로 사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던 시대라 어떻게 갈아타는지 몰랐다.


당황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지? 하면서 아무나 붙잡았다. 공항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는데, 내가 띠염띠염 “I cannot speak English....” 라고 하며 내 비행기표를 보여주었다. “I am Korean” 막 이러면서....


그러구봤더니, 내가 영어를 못하네? 나 영어 잘하는 줄 알았는데???


영어의 나라 호주이니, 영어는? 이라고 한다면 영어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영어란, 고등학교때 영문법이 너무 어려워 시험공부를 하면서 울게 만드는 과목이긴 했지만, 엄청 열심히, 영어 단어를 많이 외웠고, 소설을 좋아하는 문학 소녀였기에 영단어로 문맥을 때려 맞출 수 있는 수능에서는 영어 성적이 젤 좋았다. (잘찍었다)


난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착각이었다.


정말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당황하며 거의 울것같은 나를 데리고 공항에서 일하시는 호주 분은 한국분인데 영어를 하실 수 있는 분을 찾아주셨고, 한국분은 내가 어떻게 멜번 가는 비행기에 환승할 수 있을지 알려주셨다.


무사히 멜번 가는 비행기를 타고, 멜번 공항에 도착하니 작은 고모가 마중나와 계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도 엄청 걱정하셨을것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딸이 당신들도 타보시지 못한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간다니 말이다.


어쨌든 모든 여행은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시작하고, 집에 돌아오면 안심과 추억으로 끝이 난다.


처음 간 해외 여행, 호주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


다만 몇가지 기억을 떠올리자면, 내가 있었던 곳은 hopper’s crossing이라는 기차역이 있는 곳이었다.


기억 1. 나는 멜번 시내로 매일 기차를 타고 학원에 갔는데, 기차역에서는 아이 유모차를 끌고 가는 임신한 여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장면이 충격적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기억 2. 기차 안에서 나는 윤종신의 신곡 ‘환생’을 매일매일 들었던 게 생각난다 (나이 살짝 나옴)


기억 3. 그곳에서 만났던 나처럼 영어를 못했던 대만 왕자님 (잘생겨서 내가 그렇게 별명 붙임)과 영화를 한번 봤지만 말이 안통해서 연결되지 못했고,


기억 4.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Gold Coast 의 Great Ocean Road 다.



호주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내가 갔던 계절은 호주의 겨울이었고, 호주의 겨울은 스산했으며, 까마귀들이 까악깍 거렸다.


거기다가 나는 영어를 못했고, 자신감도 없어서 (영어는 자신감이 80%) 그냥 영어는 이렇게 어렵고 공부를 해야하는구나.. 만 깨닫고 온 여행이었다.


또 호주를 간다면, 아이와 함께 호주의 여름에 가고 싶다. 멜번에만 박혀있을 것이 아니라 시드니도 가고 펄스도 가고, 가까운 뉴질랜드의 남섬 북섬도 방문하리라.


아 맞다. 학교 선배님이 나에게 맡기신 담배 한보루는? 결국엔 그 선배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 담배는 멜번으로 가져와서 버려졌다.


*호주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 사진만이 남는 건데 사진이 없어서 아쉽지만 그 당시에 나는 대학생이 처음하는 뽀글뽀글 파마를 하고 (호주 작은 고모 이웃분이 사제로 해주셨다) 고등학교때 통통하게 찐 살이 더 통통하게 찐 시기라서 없는게 다행일 수도있다.


꿈꾸는 유목민

세계여행의 기록

호주 멜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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