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앞 광장바닥에서 밤마다 솟아오르는 것, 네덜란드

다시 쓰는 뒤죽박죽 세계여행기

by 꿈꾸는 유목민

다녀 본 세계 35개국 중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한다면 어느 나라를 선택하겠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네덜란드라고 말한다. 나만의 기준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방문하는 나라의 현지인이 내가 느끼기에 외국인에게 친절한가, 두 번째는 현지 채용된 한국 직원의 삶은 어떤가이다. 우선 첫 번째 기준에서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 시절 때부터 무역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교역을 했기 때문인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해 괜찮은 편이다. 오히려, 겉으로는 상당히 친절하다. 속으로는 다르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뉴질랜드 키위들의 은근한 차별을 느꼈다면 네덜란드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감정이다.


두 번째로는 네덜란드에서는 일하는 부모를 위한 배려가 국가 정책으로 보장되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한국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이더라도 워킹맘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직장에서도 워킹맘은 1주일에 2, 3일 근무 선택이 가능하고,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네덜란드로 출장 전 한국에서는 <다큐프라임 – 행복한 천국, 네덜란드>를 방영했는데, 세 명의 아이가 있는 네덜란드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 엄마가 일주일에 3일만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걸 인터뷰한 영상이 있다고 들었다 (출장 간 직장이었다). 당시 한국 엄마들은 네덜란드 앓이에 빠졌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었다. 인터뷰한 여성의 남편(한국인)을 포함해 현지에 있는 한국 사람들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회사 주재원이 다큐프라임 이야기를 언급하며 '우리 회사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인건비 절감 측면에서 좋지 않다'고 해서 민망했다. 하지만 그건 ‘라떼’를 칭송하는 ‘꼰대’의 의견이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어쨌든, 네덜란드에서 살려면 여러 면에서 오픈 마인드여야 한다.


네덜란드는 히딩크의 나라로만 한국에는 알려져 있었을 때였는데 잠시 머무는 여행객이 아니라 몇 개월 머물며 살다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가 많은 나라다.

출장 시 머물렀던 호텔의 레지던스는 방이 2개, 거실, 부엌이 갖추어진 곳으로 혼자 있기에는 조금 아까울 정도로 좋았다. 2층 테라스가 있는 방 바로 아래는 틸부르흐 광장을 둘러싸고 여러 개의 펍과 맥도널드가 있었다. 물론 좋았다. 날씨도 좋아서, 사람들이 광장에서 낮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그들의 여유를 함께 느끼며 해외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나를 들여다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주말 밤은 너무나 괴로웠는데, 다음 날 새벽 5 ~6시까지 광장에서 이어지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술주정 때문이다. 대부분 유럽은 저녁 8시 이전에 가게들이 문을 닫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있던 호텔 근처 펍들은 새벽까지 영업했다. 술을 마시고, 펍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호텔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더럽혀놓곤 해서 호텔 현관문을 주말 밤에는 잠갔다. 화장실이 급한 젊은이들은 주로 주차장에서 볼일을 보는지 주차장 계단은 지린내가 진동한다. 대책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할 때쯤 믿지 못할 소식을 접했다. 어느 날 출장자가 말하길, 호텔 앞에 밤이 되면 화장실이 위로 솟아올라 온다는 것이다. 평소에 말도 안 되는 뻥을 잘 치는 사람이라 무시하고 말았는데 그 장면을 목격했다. 밤이 깊어지자, 호텔 앞 광장바닥에서 소변기가 솟아올랐다. 남자들이 소변만 볼 수 있는 동그랗게 4칸이 있는 오픈 화장실이었다. 밤늦게 호텔 주변을 돌아다닌 적이 없어서 누군가가 그곳에서 일을 치르는 걸 본 적은 없었다. 사람들이 노상 방뇨를 하고, 주차장에서 소변을 누고 하니까 지역사회에서 그런 대책을 마련했나 보다.


화장실 말고 흥미로웠던 건 축제다.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 운이 좋아 지역 축제를 두 번 경험했다. 하나는 핑크 게이 파티로 핑크 양복을 입은 여성이길 원하는 남성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여기저기서 술을 마신다. 그들과 함께 축제를 즐기러 모인 관광객들도 도시를 가득 채웠다. 두 번째는 축제 때가 되면 옮겨 다니는 놀이기구다. 말레이시아에 살 때도 가끔 보았는데 놀이기구들을 옮겨 다니며 작은 도시마다 축제가 열린다. 놀이기구는 범퍼카같은 소형 기구가 아닌 에버랜드에서 탈 수 있는 커다란 바이킹, 관람차, 롤로 코스트같은 대형 놀이기구다. 내가 경험한 네덜란드는 그러니까 지루하지도, 너무 요란하지도 않은 나라이다.


네덜란드 출장에서 또 기억나는 일 중 하나는 ‘all you can eat’의 추억이다.

장기 출장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먹는 것과 세탁이다. 호텔 방마다 세탁기 건조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호텔 세탁 서비스는 계속 이용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아침 식사는 호텔 조식을 이용한다 치지만, 저녁이나 주말 식사를 매번 사 먹기는 부담스럽다. 출장자들은 이에 적응해 출장일정이 2~3개월 이상이라면 호텔과 꼭 네고를 했다. 얼마나 머물 예정이니, 하루에 무료 빨래 수량, 호텔 라운지 사용권을 네고한다. 함께 출장 간 동료가 네고를 훌륭하게 해서, 하루에 빨래 3개, 아침, 점심 lunch box 제공, 저녁 호텔 식사, 맥주 혹은 와인 2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은 트립어드바이저에서 평점이 좋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스테이크와 틸버거 (그 지역 이름 틸버그 + 햄버거의 조합어)를 가장 좋아했다. 스테이크는 부드럽고 알맞게 구워졌고, 스테이크와 함께 나오는 감자튀김은 직접 감자를 잘라 즉석에서 튀겨 마요네즈와 함께 나왔다. 잘 구워진 스테이크와 와인, 혹은 지역 수제 맥주를 주문해 매일 저녁 만찬을 즐겼다. 며칠 연달아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어느 날부터 고기의 품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질긴 고기는 억지로 씹어야 했고, 고기의 반이 소고기의 지방이라 버려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호텔 주변 맛집에서 식사했다. 네덜란드는 한식, 중식, 일식 'All you can eat' 이 많은데, 이는 뷔페를 의미한다. 호텔 뷔페처럼 직접 가서 자신이 먹을 음식만 골라서 오는 방식이 아니라 메뉴판에서 음식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요리해 손님에게 제공된다. 주문서에는 전체 메뉴를 8번까지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8 round 라면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 3 round에서부터 배부르고 먹기에 지친다. 출장자들과 호텔 앞 일식 ‘all you can eat’ 레스트랑에서 주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저씨들 네 명 그리고 나였다. 남자 네 명의 각오가 그날따라 비장했다. 8 round까지 주문하겠다고 했다. 말도안되는 경쟁심과 비장함에 어이가 없었다. 그들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 같은 일식 뷔페에서 온갖 종류의 스시와 튀김을 1 round부터 무차별적으로 주문했다. 1 round 음식이 전부 나오기도 전에 다음 round 음식을 주문했다. 맛있다며 이전에 먹은 스시를 다시 주문했다. 음식이 끊기지 않게 끊임없이 주문하던 우리는 3 round부터 배부름을 느꼈고 나는 슬슬 다음에 나올 음식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승부 근성인지 남성 출장 멤버들은 8 round까지 가겠다는 허풍을 진심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 주문했다. 맛없는 음식까지 꾸역꾸역 먹었고, 스시 밥알은 미소 국에 몰래 빠트려 숨겼다. 끝까지 가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꼼수를 부리며 주문한 음식을 숨겼다. 모든 뷔페의 룰이 그렇듯이 음식은 남기면 벌금이다. 결국, 그들은 7 round에서 포기했다. 호기롭게 8 round와 전쟁을 벌인 출장 멤버들은 터지기 지전까지 부른 배를 안고 잠이 들어야 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출장지에서 남는 건 힘들었던 업무 스트레스보다는 소소하게 즐거웠던 일이다. 프로젝트의 스트레스로 누군가를 미워했던 일도 세월이 지나면 너그러워지고 함께 한 재미있는 일만 기억된다. 네덜란드 출장은 특히 그랬다. 아이를 낳고 돌이 되기도 전에 장기 출장을 다니며 몸과 마음 모두 힘들었던 시기, 누군가는 아이 엄마가 아이를 두고 먼 곳까지 출장 와서 뭐하냐며 당장 돌아가라했고, 누군가는 아이를 봐주시는 나의 친정어머니에게 감사하며 프로젝트 성공을 위한 나의 노고에 감사했다. 그래서 스스로 후자와 같은 어른이 되길 연습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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