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25년 6월 10일 화요일
뉴질랜드 D+144
뉴질랜드라는 섬에서 아이와 함께 정말 섬처럼 지내고 있다. 아이는 매일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지만 나는 요즘 일단 인간관계는 저 뒤로 하고 고독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처음에 잘 해보겠다고 괜히 힘을 줘서 죽을 뻔 했다. 매일 읽고, 쓰고, 달리고 걷는 시간에서 요즘 푹 빠져있는 건 바로 "요리"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먹을 간식과 점심을 싸야하다보니, 하루 네끼를 고민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엄마의 요리는 항상 다 때려넣고 속전속결이었다. 맛없지는 않았으니 아버지는 매일 장군밥을 몇 그릇씩 드셨겠지.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속전속결로 나름 요리를 '잘'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결혼 전 내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던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결혼한 후에는 내가 한 요리에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삼겹살이 빠삭하게 안구워졌다, 달걀은 완숙이 아니라는 둥 솔직하게 말한다며 맛을 지적했다. 이 일로 몇 번 다투다가 남편이 아침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이를 낳고도 남편은 내가 한 요리는 거의 먹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내가 한 음식인데 고모가 했다고 하면, 맛있다고 먹고, 다른 사람이 한 요리를 내가 했다고 하면 입도 대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지만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 무의식이 그의 행동을 지배하는 듯 해서 짜증났지만 그냥 뒀다. (쓰다보니 열받네)
어쨌든 뉴질랜드 학교는 급식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야한다는 사실이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점심 뿐 아니라 morning tea라는 시간이 있어서 간식까지 싸야한다니. 뉴질랜드 아이들은 간식, 점심 모두 과자 한조각, 샌드위치 한조각만 점심으로 싸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장기 아이들을 그렇게 먹이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성장기 아이들의 영양 문제로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오클랜드부터 급식 시스템을 도입중이라고 하는데 다인종이 모여살다보니, 채식, 알러지에서부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있는 동안 크라이스트처치 학교에서 급식을 실시하는 일은 없을테니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하기 시작했는데, 도시락 싸는 생활.. 그러니까 요리를 하는 시간이 내 일상에 큰 비율을 차지한다.
북스타그램을 하고 있는데, 스토리에 매일 아이의 간식과 점심도시락을 찍어 올린다. 그러다보니 인스타피드에 자주 뜨는 건 요리릴스다. 웃프지만 꽤 도움이 된다. 한국 엄마들의 도시락은 김밥, 삼각김밥, 볶음밥 돌려싸기인데,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인스타 요리 릴스를 들여다보며 간식과 점심 도시락을 무엇을 싸야할지 머리를 굴린다.
특히 오늘은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
간식은 고구마 치즈 구이, 점심은 칠리 새우 덮밥. 새벽에 일어나 전기밥솥 잡곡 취사를 눌러놓고, 북클럽 리딩 메시지 예약발행과 글쓰기를 끝냈다. 그리고 고구마 치즈 구이를 하고, 칠리 새우를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아이를 깨우기위해 베토벤 합창교향곡 콘서트 유튜브 영상을 크게 틀고 침대방 문을 열어 냄새를 풍겼다. 어제 전자책으로 책을 읽느라 나보다 늦게 잔 아이가 피곤한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10분의 시간을 더 주기로 하고, 보온도시락에 밥을 담고 칠리 새우만 담으면 끝인데 전기밥솥을 여는 순간 경악했다. 밥이 거의 생쌀 수준이었고 밥이 되어있지 않았다. 물을 잔뜩 붓고 취사버튼을 눌렀지만 아이가 학교 가기전까지는 안될듯했다. 아침 식사로 미역국까지 다 끓여놨는데 아쉽지만 오늘의 아침은 고구마 치즈 구이와 칠리 새우(만), 그리고 사과로 하기로 했다.
일어나 아침식사를 살펴보던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엄마의 타들어가는 마음은 모른 채 "오늘은 아침이 조금이라 너무 좋다!"라고 한다. 고구마 치즈 구이를 한 입 먹어보더니 엄청 맛있다고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엉망이된 부엌을 정리하고 있는데, 만족스러운 아침을 먹은 아이가 내 뒤로와서 백허그를 살며시 해준다.
"엄마, 이렇게 맛있는 음식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들어 자주 이런다. 그래서 내가 신명이 나 요리를 하려고 하나보다.
무엇보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마음을 말로 전달해주는 아이가 대견하다.
덧, 오늘은 방과 후 수영연습을 했는데 하고 싶은 만큼 하랬더니 멈추지 않고 해서 거의 1,000m 는 쉬지 않고 왕복한듯하다. 요즘 깜짝 깜짝 놀라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