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부츠에 도착해서 베프와 같은 방을 배정 받았다. 멤버는 동기, 선배, 교수님까지 20명이었다.
여자 숙소, 남자 숙소가 건물이 달랐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숙소 건물이 두개 동이 있었고, 나는 앞동에 있었는데 앞동과 수업하는 교실과의 거리는 10 발자국 정도 되었다.
에피소드 1. 어느날은 늦잠을 자서 샤워를 하자마자 부랴부랴 교실로 향했는데, 머리에 새똥 세례를 맞았다. 10발자국에도 새똥을 맞을 수 있는 그런 곳 이었다. 머리에 새똥을 맞으면 누군가가 돌아가시는 거라며, 눈치없는 동기가 겁을 줬던 기억도 있다. 바로 에피소드 3에서 나오는 동기다.
에피소드 2. 아침 수업은 7시 45분쯤 시작되기에, 일찍 일어나서 공동 식당으로 향한다. 대부분은 해외여행이 처음이었고, 먼저 다녀온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고추장을 3통 (큰 통) 정도 가져온 것같다.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키부츠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우리는 매일 고추장 통을 돌아가면서 들고 식당에 갔다. 김치는 냄새가 나니 가져가지 않았고, 고추장을 대용으로 가져갔었다.
우리가 매일 고추장 통을 가지고 다니니, 키부츠에 살던 가족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나보다. 어느날 장난끼 많은 초등학교 4학년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오더니, 이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우리는 Chilly paste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근데 그 아이가 갑자기 그걸 좀 달라고 하더니, 식빵에 열심히 바른다. 그리고나서 자기 아빠에게 딸기쨈이라며 가져다 주었는데, 그 뒤는 상상에 맡긴다.
에피소드 3. 키부츠 안에는 온갖 동물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 중에 염소도 있었다. 염소가 어느날 우리 숙소를 습격했고 어떻게 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사이에 남자동기가 염소를 번쩍 안아서 숙소밖으로 꺼내줬다. 분명 고마운 일인데, 그 다음부터 그 동기는 '염소애비'로 불렸다. 염소애비에서 파생된 별명은 벼룩애비이다. 염소에 벼룩이 많다고 했었는데, 그 염소를 번쩍 안아서 들어올렸으니, 동기몸에 벼룩이 있을꺼라며 한동안 피해다녔다.
에피소드 4. 나랑 내 베프는 약간 통통 체형에 속했는데, 이스라엘 식당에서도 아주 잘 먹었던 것같다. 중학교때 몸무게가 60킬로였다가 충격을 받고 40킬로까지 다이어트를 성공한 같이 간 여자 동기가 있었는데, 그 동기의 조언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야채를 많이 먹어야하고.. 운동해야하고.. 등등, 그 당시 나와 나의 베프는 야채를 거의 먹지 않는 육고기파)
매일 저녁 수업끝나고 저녁 먹고, 운동장을 같이 뛰던 기억도 있고, 운동장을 다 뛰고 들어와서 배가 고프다며 숨겨놓았단 달걀을 몇개 먹었던 생각도 난다. 결론은, 다이어트 실패!
우리는 매일 밤마다 모여서, 한국가면 가장 먼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나열했다. 나는 그때 외할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외할머니의 육계장이 너무 그리워서 한국에 전화할 기회가 있었을때 외할머니께 돌아가는 날 육계장을 꼭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있다.
에피소드 5. 우리는 주말마다 이스라엘의 곳곳을 여행다녔는데, 교수님이 가이드를 해 주셨다. 교수님은 항상 몇시 방향을 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상당히 신선했다. 방향을 몇시라고 표현을 하다니.. 너무 찰떡같은 표현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군대에서 쓰는 용어라고 했다. 가끔 나도 사람들한테 길을 설명할때 그때의 기억으로 몇시 방향이라고 이야기해준다.
에피소드 6. 20명중에 남자 선배들은 대부분 복학생들이었다. 키부츠에서는 요리를 해 먹을 수가 없었는데, 나는 그때 뽀글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컵라면이 아닌 봉지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다니! 정말 너무도 신세계였다. 그 이후에 캐다다 연수를 갔을 때 일본 친구들에게도 소개시켜주었다.
에피소드 7. 젤 기억에 남는 장소는 베드윈 마을이다. 베드윈은 유목민들인데, 유목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체험도 하고 (텐트 안에서 차마시기), 낙타도 탔다! 낙타를 처음 타봤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낙타가 혓바닥으로 내 다리를 핥는 바람에 소리를 마구 질렀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도 재미난 일도 많이 있었다. 키부츠에서 하는 이스라엘 전통 결혼식을 보러갔다가 거절 당한일, 수영장에서 수영도 못하는데 물에서 놀다가 종아리에 쥐나서 시선집중 받은 일, 한복 입은 성모 마리아가 한복입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 있는 벽화가 있는 성당에 방문한 일, 협곡과 좁은 동굴을 하루종일 걸었던 일, 키부츠를 떠날 무렵 한국에서 이모에게 빌려 싸간 한복을 입고 가정방문했던 일 등등...
이스라엘에 가기 전에 나는 방학이면 그냥 집에서 누워서 티비만 보고, 내 시간을 알차게 살아나가는 방법을 몰랐었는데, 이스라엘에 다녀오고나서부터 치열하게 살았던것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