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

by 아차산호랑이

나는 최소한의 계획과 준비만 갖춘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해외를 갈땐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의 여행준비는 비행기표와 숙소만 예약한 후 가이드북 1권 사면 끝이다. 가이드북마저 여행지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 펼쳐든다. 그만큼 나의 여행은 최소한의 준비만으로 끝이 난다.


나도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을때는 엑셀에 시간대별로 철저한 준비를 했던 것 같다. 20대초반 군제대 후 친구들과 떠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때까지는...


해외배낭여행이 처음이었던 우리는 설렘반 걱정반으로 자주 카페에 모여 많은 정보를 검색하고 촘촘히 계획을 세웠었다. 호텔, 숙박은 물론이거니와 교통편, 관광지, 맛집. 그리고 시간부터 동선까지 나름 완전무결한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실제 여행을 하는 동안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계획은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교통편의 변수가 생겼고, 소매치기에게 스마트폰을 도둑맞아 경찰서에서 시간을 보내고, 기대했던 맛집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실망을 하게 되는 등 우리가 상상했던 여행과 실제의 괴리는 생각보다 컸었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그렇게 아쉬움과 실망이 가득한채 끝이 났다.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첫 해외여행을 통해 '철저한 계획이 있더라도 변수가 늘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의 여행들에서는 점점 준비의 정도나 계획의 수준을 줄여나갔다.


계획이 적으면 역설적으로 계획이 많을때 생기는 '변수'들이 전혀 변수로 느껴지지 않게 된다. 왜나하면 무계획이 나의 계획이었으므로 모든 돌발변수들이 그저 여행의 재미요소로만 느껴지게 되기 때문이다. 특정 사건도 계획이 있을때는 내 다음 일정을 망칠 수 있겠지만 무계획 상태에서는 그것 자체가 새로운 일정, 새로운 계획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마음이 평온해지며 더 넓은 시야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여러 여행계획 중 가장 먼저 없앴던 계획은 '맛집찾기' 였다. 여행전 블로그와 가이드북에서 찜해둔 맛집의 음식 중 기대했던 만큼 맛있었던 음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또 해외라도 맛집엔 언제나 한국인들이 대기하고 있으며, 그래서 특색은 더 사라지고 SNS에 경쟁처럼 음식 사진을 올리며 타인에게 내 여행의 평가를 맡기는 게 싫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채 들어간 음식점이나 현지인에게 추천받은 음식점에서 먹은 음식이 입맛에 맞을때가 더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물론 이건 개인의 성향의 차이일 것이다. 누군가는 아무런 준비없이 낯선 곳에 갔을때의 불안감 때문에 더욱 괴로울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평소 도전적인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에 잘 적응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낮선 곳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없는 편이기에 계획없이도 여행을 잘 즐길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혹자는 우리의 인생을 두고 여행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는 철저한 인생계획 속에 안정적인 인생을 계획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남들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SNS의 맛집이 아닌 나만의 맛집을 찾아 헤매는 인생을 추구할 수도 있다. 계획여행의 실패 후 느낀 자유로웠던 무계획 여행처럼,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을 세운 여행처럼 내 인생도 더 자유롭게, 많은 변수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생이길 소망하는 요즘이다.


그래, 계획은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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