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지출 측면에서 가족이 한 명 늘어났음 이상의 추가를 의미한다.
아내와 나는 가난에 친숙해 줄일 수 있는 비용도 하나뿐인 아들에게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아이에게까지 가난의 아우라를 덧씌우고픈 생각은 없었기에 그러했다.
그렇다고 럭셔리하게 키운 것은 아니다. 아내나 내가 누리지 못한 것을 조금 건넸을 뿐이다.
난 아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탑승형 전동자동차 30만 원을 사주고 아내에게 한동한 잔소리를 들었다. 반대로 아내는 백화점에서 아들 옷을 구입해 와서 인터넷으로 구입했으면 저렴하지 않았냐는 나의 잔소리를 들었다. 차이만 있을 뿐 아내나 나는 아들에게는 가급적이면 해주려는 생각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아들이 1학년을 입학하던 해 아내는 육아휴직을 했다. 물론 이 시기를 대비해 여윳돈을 저축해 두기는 했다. 장난감을 종종 사주는 나에 대한 경고성 발언을 아내는 아들에게 했다. 아들은 울면서 말했다.
"힝, 엄마가 휴직하면 장난감도 못 사고~"
아들이 체감한 가난은 장난감을 받지 못하는 일인가 보다.
가난이란 빚의 굴레에 있었다면 우린 아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을 했다.
일반적 부모라면 가난 때문에 자녀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에 상당히 가슴이 아팠으리라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