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 후 6개월 대형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원래는 창고에서 하는 일이었다. 해외에서 대량의 옷이 들어오면 각 매장별로 일정 수량을 뿌려주는 것이 주 업무였다. 가끔 일손이 부족하면 다른 팀의 허드렛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디자인팀 이사에 불려 가 짐을 날랐고 재고 할인 행사에 동원되어 가판에서 물건을 팔기도 했다.
연말 80% 할인 행사에 나갔다. 옷에 적혀있는 택가격에 80% 할인이면 손해가 아닐까 싶었다. 옆에 있던 정직원에게 이건 팔수록 손해 아니냐 물었더니 대강의 내막을 알려주었다. 옷이란 제품에서 원가는 높지 않다 했다. 공장이 모두 개발도상국에 있는 이유도 원가절감 때문이라 했다. 그 외에 광고비와 물류비가 원재료비 보다 높다 했다. 제품 출시 직후 신상품이 30%만 팔려나가도 손해보지는 않는 장사라 했다. 지금 여기서 80% 할인하는 옷들도 제품 원가로 따지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 했다. 오히려 그보다 계속 가지고 있는 물류비가 높아 이렇게 팔아버리는 게 회사로서는 득이라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난 옷을 제값 주고 사는 것은 상당한 거품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아르바이트했던 회사가 소유한 의류 브랜드는 50개가 넘었다. 당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넘어오는 옷 중에서 어떤 것은 브랜드 명만 달리 붙였을 뿐 디자인이 똑같은 옷들도 즐비했다.
브랜드를 따지는 이들도 있으나 난 그런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유이다.
옷을 잘 입어야 하는 직종도 있다. 누군가를 만나서 실적을 올려야 한다면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잘이 꼭 고가 브랜드를 의미하는 것인지 난 잘 모르겠다.
수백만 원의 정장과 신발, 천만 원을 가뿐히 넘는 시계 등으로 치장한다면 타고 다니는 차는 억대를 넘는 세단이어야 한다. 이런 품목은 감가상각이 심해 계속 과다한 지출이 이어지게 한다.
폼나는 치장품들 보다는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산을 난 선호하는 편이다. 가난에서 겨우 벗어난 나에게 아직 없이 살았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라는 이유도 분명 있다. 끄적거리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의미 없는 현란함을 쫒는 위험이 다시 가난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이란 생각도 든다.
"왜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녀요?"라는 아이들의 말에도 데미지가 없는 이유이다.
(실제 같은 옷을 두세 개씩 가지고 있기도 하고 거의 대부분 검은색이라 이런 오해 아닌 오해는 오래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