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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디폴트값으로

가난의 대물림

by Aheajigi

"난 일본으로 여행 간다."

"거짓말!"

이 대화는 아내가 가르치는 8세 1학년 사이에서 벌어진 실화다. 내막을 알고 나니 참 씁쓸했다.

한 아이는 해외 여행을 간다니 신이 나 자랑을 했던 것이고 다른 한 녀석은 작은 시골읍내를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기에 상상할 수 없는 &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듣고 반응한 것이란다.


사람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친숙한 환경을 일반적이라 판단한다. 자주 접하고 계속 겪어온 것이 디폴트값이 되는 것이다. 슬프게도 가난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난 어떻게 하든 버텨내면 그만이지만, 자녀라면 전혀 달라진다. 작은 것을 바라는 것이 허황된 현실, 개선될 기미도 없는 미래를 자녀에게 물려주고픈 부모는 없을 것이다. 채무가 있는 상태에서 아내와 내가 자녀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아이가 이런 형편을 디폴트값으로 보고 자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모가 힘든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자녀 교육이다. 20년 전 10억 자산을 만든답시고 참 여러 일을 벌인 친구가 있다. 물론 결말은 파산에 가까운 몰락이었다. 다행스레 지금은 상당한 부를 축적했지만, 아이 셋은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공부와는 담을 아주 높게 쌓은 모양이다. 본인 자녀는 공부에는 재주가 없다 말하지만 그 시기에 자신이 돈벌이에 함몰되어 전혀 신경 쓰지 않음은 여전히 자각하지 못한다.

부모라면 내 자녀의 기본적인 생활태도나 공부를 대하는 자세에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한다.


가난 탈피를 위한 스스로에 대한 노력과 함께 자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제반 환경에도 상당한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전자와 후자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한다면 가난은 대물림될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


가난은 무기력에 이은 무서운 친숙함으로 질기게도 따라붙는다. 가난이란 늪에 빠지면 이것이 디폴트값처럼 되어 대를 이어 전해지지 싶다. 3대를 지나야 삶의 질이 놀라간다는 정보를 접한 게 10년 전이다. 다음세대는 가난 탈피를 위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하게 될까? 이것이 과연 개인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일까라는 의구심도 크다.


돈과 양육의 균형은 가난을 등에 업고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린 지금 증세를 논할 시기이다. 실상은 부자 감세로 돌아가고 있다. 부유층은 감세 없이 살아감에 불편함은 없다. 그들에게 세금은 큰 비중이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젊은 층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주거를 제공하여 안정적 사회기반을 만들어주기 위한 증세를 했어야 한다.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는 든든한 젊은 세대는 나라의 근간을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다.

언제쯤 우린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정치를 하는 세상에 살 수 있을까 싶다.


오늘날의 덴마크란 선진 복지국가가 있는 데는 그룬투비라는 선구자가 큰 몫을 했다 한다. 그의 명언은 '농민이어 깨어나라!'였다. 백성이 무지에서 탈피하지 않는 이상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제발 변화의 기미라도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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