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원치 않는 관심은 상처다.

참견질

by Aheajigi

남의 상처는 얼마나 깊은지 모른다. 육체적 질병도 그러하거니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생체기는 가늠하기 어렵다.


몸이 아프면 웅크린다. 마음도 아프면 감춘다. 그래서 타인의 아픔에 아는 채 하는 것은 오지랖일 때가 많다.


보듬어 주기를 원한다면 먼저 상처를 보인다. 아픈이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드러낼 생각이 없는 것이다.


아픔이 안으로 곪으면 커지기 마련이다. 육체나 정신이나 관리가 필요하지만 당사자가 이를 알아채기란 어렵다.

안타까움에 위로를 건네지만 그 조차도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참 조심스럽다.


곁에 누군가 있음을 알리는 시그널만 보낸다. 가끔의 연락과 실없는 수다로 존재를 드러낼 뿐이다.

오지랖이나 참견질이 되지 않으려는 고심 끝에 나온 행동이다. 이것이 도움이 되는지 옳은지 그건 모른다. 내가 누군가에게 하는 것들이 받는이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했다 말할 수는 없기에 그러하다.

비타민 같은 아이처럼 살포시 안아주며 위로를 건네는 삶을 난 살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난 여전히 어설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누구나 끝은 모른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