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거부하는 아이
어찌 하다보니 이 아이와는 2년째 보고 있습니다. 피하고 싶었지만, 뽑기를 잘 못하는 똥손 탓에 또 만났습니다. 코로나19로 시작된 원격 화상수업이 이 아이가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는 방법을 터득한 시작이었습니다.
화상수업은 손길이 미치지 않는 모니터 너머에 있기에 이 아이는 마음껏 하고픈대로 행동합니다. 카메라를 끄거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는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합니다.
"카메라가 고장났나봐요."
그도 아니면 자리를 이탈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어디갔냐 물으면 '화장실'이라 답하지만 오전 수업내내 얼굴도 비치지 않습니다. 뭐라 할 수도 없는 핑계를 참 많이도 만들어냅니다. 핑계거리 만들 열정이면 차라리 수업을 하는게 낫다 싶을 정도입니다.
원격 수업은 제 시간에 들어오지 않다보니 아이와의 수업보다 아이 보호자에게 보낸 메시지가 더 많지 싶을 정도 였습니다.
겨우 그렇게 한해를 보냈는데...
그런데 올해 또 만났습니다.
어찌 해야할지 알 수 없는 아이입니다. ADHD라고는 하는데 크게 두드러진 과잉행동은 없습니다. 이제 면대면 수업임에도 이 아이는 원격 수업 분위기를 냅니다.
수업이 시작되거나 말거나 학습활동을 하거나 말거나, 책을 꺼내라하니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작년에 책이 없다고했는데 결국 책상과 사물함에서 모두 나왔던것 기억하지."
작년처럼 넘어갈 줄 알았나 봅니다. 결국 이 아이 책을 찾는데 수업 시간의 절반이 날아갑니다. 책이 꺼내졌다고 공부를 할리 없습니다. 눈동자는 허공을 날아다닙니다. 길어지는 잔소리로 안그래도 부족한 수업시간이 더 쫒기기 시작합니다.
수개월이 지나도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공부를 시켜보겠다고 조금씩 남겨 1학년 받아쓰기를 시켜봅니다.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만, 학부모 허락하에 잠깐이라도 남겨서 한글자라도 더 가르쳐 보려 시도합니다.
인후통이 있으면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어느날 부터인가 열심히 코를 쑤시고 그 손으로 눈을 비빕니다. 아이는 눈이 붉게 변하면 보건실로 달려갑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조퇴가 시작됩니다. 이 아이는 조퇴를 하면 받아쓰기를 피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입니다.
내가 지쳐가기도 하고 이 아이에 대한 교육적 효과도 없습니다. 가르침이 아니라 속박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자책을 합니다. 다른 아이들의 학습도 중요했기에 이 아이에 대한 잔소리를 이제 그만 거두어 들입니다. 관심과 에너지를 나머지 아이들에게 쏟습니다.
학기말 코로나로 인해 부실해진 수학 기초를 다잡기 위해 문제를 풀면서 짚어나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가 또 힐끔힐끔 눈치를 봅니다. 무엇이 이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었나 싶어 문제지를 들고 나오라 합니다. 단 한문제도 풀지 않고 모두 틀렸다는 표시만 가득 합니다. 문제지를 주면 백지로 두고 그렇다고 주지 않으면 차별이라 할테고 참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아이는 마음껏 교실속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지만, 교사인 나는 이 아이의 교육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어 고민이 많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