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plow Parent

끝이 없군!

by Aheajigi

스노플로 맘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단다. 일명 제설차 부모.

이들은 자녀가 겪을 수 있는 어려움, 실패, 스트레스를 사전에 모두 제거해 주는 헬리콥터 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란다.

이럴 거면 그냥 자녀 삶을 대신 살아주지.


자녀가 소중하다 할지라도 아이의 인생은 오롯이 그 꼬맹이의 몫이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간섭을 하고 알려주려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심지어 미래는 예측도 안되는데 부모 기준에서 판단했던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용어만 없었지 이런 가능성 짙은 양육자들인 이미 겪어왔다. 그들의 자녀들이 괜찮으냐 물으면 대답해 줄 수 있다. 절대 아니라고 말이다.

숙제를 내면 우리 아이는 이런 과제는 할 수 없다거나 '엄마가 하지 말래요'란 말로 되돌아온다. 수행평가지도 내지 않거나 백지로 제출하니 성적은 낮다. 모둠별 협업이나 발표와 같은 정말 필요한 과업 또한 든든한(?) 양육자를 믿고 가뿐하게 무시한다. 학교교육도 이런 지경인데 사회생활이라고 다를까 싶다.


오냐오냐 키웠던 친구라 말하기도 뭐 한 내 또래 아는 놈은 현재 직업도 없이 그 동네에서 엄마 때리는 녀석으로 불리며 살고 있단다. 어린 시절 나를 밀쳐 이마가 찢어지게 만든 상황에서도 부모란 자들은 당신들 아이만 두둔했을 뿐 사과 한 마디 없었다. 그가 나를 밀친 유일한 이유는 또래끼리 했던 게임에서 지기 싫어서였다. 같은 동네 살았으니 계속 어울려 지내기는 했다. 그 집에서 놀다 점심을 먹고 가라 해서 지켜보았던 장면은 지금도 납득이 안 가긴 한다. 밥을 먹으라 부르셨고 난 식탁에 앉아 먹었다. 정작 먹어야 할 녀석은 안 먹는다 도망치고 엄마란 사람은 밥그릇과 숟가락을 들고 같이 뛰어다니며 겨우 한 숟가락씩 떠먹였다. 동네 다른 아이들에게는 단호하게 호통치던 그의 아빠란 사람도 아이에게만큼은 무르기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그들이 길러낸 아이는 결국 상전이 되어 기분이 나쁘면 양육자를 때리는 어른으로 길러졌다. 고등학교 시절 같이 학교를 다녔다. 교실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고 늘 움츠린 모습이었건만, 집에서는 왕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Snowplow Parent가 어떤 아이를 길러낼지 아직은 명확하지 않으나 그 끝은 별로 알고 싶지 않다. 내가 그런 이들과 엮이지 않았으면 싶고 내 아들의 바운더리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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