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무렵 아들이 몸을 일으키더니 벌떡 섰다. 아내와 나는 서서 활짝 웃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좋아라 했다. 내내 기어다니다 일어선 세상은 아들의 시선에서 다른 모습이었겠지 싶었다. 곧 걸을 줄 알았지만 아들의 걷기는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15개월부터 시작되었다. 아들은 걷기 위한 충분한 준비기간이 필요했었나보다.
'학습연구년제'라는 이름으로 교사들은 1년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선발을 통해 주 2회 출근과 주어진 과제를 연구하지만시간적 여유는 많다.
학습연구년제를 지원한 건 번아웃과 몸의 밸런스가 무너져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상 쉼이 나에게 주어졌지만, 난 6개월간 쉬지 못했다.
"쉼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은 불편함에서 비롯되었는지 난 무엇인가 일거리를 붙들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도 아니었음에도 일을 내가 만들었다. 결국 동료 교사에게 부탁해 고안한 학습지도안 적용을 부탁했고 자료들을 정리해 제출한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쉴 줄을 모르는 워커 홀릭!"
그 뒤로도 다음 해 무엇인가 하겠다고 논문들을 뒤적거리고 학습모형을 구상했다. 그때 준비한 것들로 이듬해 또 상을 받기는 했다.
"아빠는 왜 집에서도 바빠?"
아들의 이 한 마디에 쉬는 시간조차도 불안해하고 있었던 나를 발견했다.
아들이 아빠처럼 일에 함몰되어 살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아빠도 놀 수 있다!'를 아들에게 몸으로 보여줘야 했다. 하고 있던 모든 것을 놓았다.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는 산길을 천천히 걸었다. 아들이 학교에서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하루 일과를 짰다.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자 하루는 정말 바쁘게 흘러갔다.
언제부터인가 아들이 자기 전에는 컴퓨터 스위치를 켜지 않았다. 일만 하는 아빠를 아들이 따라 할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난 여전히 잘 쉰다는 의미를 모른다. 40이 훌쩍 넘어서도 내가 쉼을 모를 줄은 몰랐다.쉼이 어떤 의미인지 고심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들이 걸음마를 준비하기 위해 일어섰듯 난 이제 겨우 쉼의 필요성만 알게 되었다. 어찌해야 제대로 쉬는 것인지 찾는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