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학교. 불안과 초조
같은 심정일수도 있겠다.
안내데스크, 채혈실, 엑스레이 촬영실까지 익숙하다. 내가 이 병원의 복잡한 위치를 능숙하게 파악하는 까닭은 폐농양과 담낭제거 수술로 입원했던 병원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집 근처 개인병원으로 가도 그만이었지만, 오진으로 병을 키워봤던 앞선 두 번의 경험은 본의 아니게 의사 프로파일을 확인하게 만든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의 지난 경험은 종합병원 전문의를 찾게 만들었다. 웬만하면 병원을 잘 가지 않지만,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이 시골에서는 무조건 이곳으로 향한다.
부모들에게 있어 자녀를 학교에 보낼 때도 같은 심정이겠구나 싶다. 자녀의 학교 경험이 어긋날수록 보다 괜찮은 담임을 만났으면 싶은 바람이 있을 것이다.
의사란 직업은 대학부터 인턴, 레지던트까지 확실하고 체계적인 양성시스템이 있어 전문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 적어도 내겐 그러하다.
하나 교직은 정말 주먹구구식인지라 이런 체계 자체가 없다. 대학부터 학교에서 가르친 경험이 없는 교수들에게 배우다보니 하등에 도움이 안 된다. 힘들게 임용고시를 통과하지만, 교사들은 첫출근부터 학생 앞에 맨몸으로 서는 기분이다. 첫발부터 시행착오를 통해 온전히 스스로 세워가야 한다. 내가 그랬다.
교사를 위한 공부는 교사가 된 이후에 연수나 직접 데이터를 찾아 습득하고 적용하며 오류를 수정해 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챗GPT의 교육적 이용 가능성도 나 홀로 나름 분석을 시도하며 길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직업적 양심 때문이지만 시작은 부끄러움에서였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수십 년 전 나를 가르친 구닥다리 방식의 답습이란 것을 처음에는 몰랐다. 공부도 아닌 교과 핵심 내용을 암기하는 방법과 시험을 잘 보는 방법에 주안점을 두고 학생들에게 이를 전수하는 오류를 수년간 범하면서 뿌듯해했다. 열심히와 부지런히가 미덕인 시대에 그것을 행했다 자화자찬했던 것이었다.
가야 할 방향도 모르면서 손발만 바빴던 것이다. 결국 이런 가르침이 잘못인지도 몰랐다. 우연한 기회에 연수를 통해 내가 끊임없이 교사로서 과오만을 범하고 있음을 알고 나서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르침을 위한 공부란 것은 나의 부족함을 절감한 뒤에야 시작했다. 여전히 내게 부족함은 많아 이것저것 채우려 노력 중이다.
온라인에서는 많은 노력을 하는 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찾는다. 나름 자신이 관심 가는 방향을 연구하고 적용하며 다른 교사에게 전달한다. 신기하게도 오프라인에서는 그런 동료를 너무 찾기 힘들다. 내가 전문지식과 치료 경험을 갖춘 의사를 찾듯 학부모들도 뛰어난 실력을 갖춘 교사를 바라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담임을 선택할 권한이 없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새학년이 불안 초조한 이유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