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엄마와 우매한 엄마
양육도 마라톤이다.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게 해 주세요."
"누구누구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데 도와주세요."
이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서 벌어진 일을 옆집에 부탁하는 꼴이다.
어울리고 싶은 어울려야 할 당사자는 또래 아이들인데 이것을 어른인 교사에게 부탁하는 게 과연 납득이 가는 요구일까?
(이런 집들은 언제까지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울 것은지 답답하다.)
아마도 아이의 칭얼거림을 곧장 해결해 주겠노라 우매하고 성급한 엄마가 나선 것이다. 아이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고 말이다. 아이는 뭔가 불편한 일이 생기면 이렇게 엄마한테 응석을 부리면 곧장 처리해 주는구나를 매우 잘 학습할 것이다. 절대로 난해한 일을 스스로 처리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손쉬운 방법이 있는데 뭐 하러 애를 쓰겠나. 앞뒤 생각하지 않고 욱하며 행동하는 엄마는 평생 자녀 뒤치다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스로 늪에 빠져버린 엄마이기에 우매하다 칭했다.
미국 어느 학교에서 자녀가 따돌림을 당했다 한다. 멍청한 엄마였다면 난리를 쳤겠지만, 아이 엄마는 고심 끝에 정성껏 도시락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교실에 있는 그 어떤 엄마보다 정성스럽게 말이다. 차츰 친구들이 도시락에 관심을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 시작했단다. 시간이 걸렸지만 아이의 노력과 엄마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어울리지 못했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자신감을 찾은 아이는 이후 학교 생활에서 친구 문제를 스스로 잘 해결해 나갔다고 한다.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고심한 현명한 엄마다.
아이를 기르는 양육은 장시간에 걸친 마라톤이다. 당장 일어난 일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내키는 대로 성질을 부려 원하는 것을 빠르게 얻어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욱하면서 버럭버럭 성질을 부리는 게 아이를 위하는 일인지 생각을 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