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함구증이 힘들었던 이유
아이보다 엄마가 힘들었다.
"선택적 함구증."
용어조차 생소한 이 말을 알게 된 까닭은 두 번의 경험 때문이다.
겪었던 선택적 함구증 아이들의 특징은 두 가지였다. 첫째, 가족 이외에 특정한 아이 한 두 명을 빼고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 둘째, 정말 꼭 해야 할 말은 자신이 아닌 정말 친한 그 한두 명의 아이를 통해 전달한다는 것.
말을 하는데 있어 기능적 문제는 전혀 없다. 심리적 문제인듯 싶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오히려 수다스럽기까지 하다 보니 양육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 판단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논문을 찾아보니 10세가 넘으면 선택적 함구증은 치료가 어렵다 했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발생한다. 부모는 대수롭지 않게 자녀의 특성을 넘기지만, 아이는 선택적 함구증 때문에 원만한 사회생활이 불가능하여 상당히 힘들어한다는 점이다. 친구들 간의 문제에 있어 아이 스스로 곡해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학교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다 보니 불만이 증폭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터뜨리기 십상이다.
이런 형태로 민원이 들어왔다. 교실에서는 큰 이상 없이 잘 지낸다 하니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주된 요지는 서운하다와 자신의 자녀에게 너무 관심이 없는 것 아이냐는 말이었다. 문자로는 해결이 안 될 듯싶어 쉬는 시간에 연락을 했더니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싶어 학교로 오라고 했다. 교실 창문을 살짝 열어둘 테니 아이가 어떻게 교실에서 지내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고 말이다.
다음 수업시간이 시작되었고 수업이 중반을 넘어설 무렵 창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보통 복도에서 누가 지나가도 신경을 쓰지 않는데 전화통화 이후 나의 온 세포는 얼굴도 잘 모르는 그 학부모에게 쏠려 있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는 모둠 친구들과 어울려 활동을 진행해 나갔고 이따금 소리 없이 웃음도 보였다. 수업이 끝났고 복도에 있던 엄마를 학년 연구실로 안내했다. 아이들은 체육전담 수업으로 나갔기에 상담에 여유가 생겼다.
전화기 너머로 난리 치던 엄마는 사라지고 다소곳이 앉아있다. 참 기가 찼다. 이제 좀 불안감이 가셨는지 물으니 아이가 잘 지내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된다 한다. 앞으로 혹시라도 불안하면 언제든지 교실로 찾아와서 직접 아이 상태를 확인하라 했더니 고개를 끄덕 거린다. 혼자 상상하지 말고 궁금하면 메시지나 연락을 하시고 그래도 석연치 않으면 직접 찾아오라 했더니 그제야 미안하다고 한다.
아이는 힘들고 짜증 나면 그 화를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풀기 마련이며 이 아이는 조금 더 특별하기에 그런 성향이 더 강할 것이라 했다. 엄마로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도 힘들 테니 나름 스트레스를 풀 방안도 찾아보시라 했더니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 상담인지 학부모 상담인지 헛갈리는 지경이나 이런 일이 다반사였기에 그닥 놀랍지도 않다.
아이보다는 아이 엄마의 동향을 살피며 그렇게 조심스레 한해를 넘겼다.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살기에 어쩌다 마주칠 일이 생기기는 한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관계가 끝났기에 더 이상 난 그들과 아는 척을 하지는 않는다. 퇴근해서도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하루하루 고민스런 일 년을 보냈다. 가르침도 아닌 아이 상태와 불안해하는 엄마로 인해 내가 그렇게 신경을 써야 하는지 지금도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