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룰렛(개학)이 다가온다.
현사태가 불러온 청구서
개학이 다가온다. 출근이 머지않았다.
가슴은 답답해지고 필요 이상의 고민은 많아진다.
러시안룰렛 혹은 종착역을 알길 없는 열차에 탑승하는 기분이다.
총을 잡고 방아쇠를 당겨봐야 총알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내가 격발로 죽게 되는지를 알 수 있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게 개학이다.
평온히 지내다가도 언제 교실이 지옥행 열차칸이 될지 교사는 알 길이 없다. 사단의 빌미는 학생 혹은 학부모로부터 나오기에 교사가 이를 방지하거나 대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와이프가 다음학기 수업 준비 안 하냐 묻는다.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했다. 준비는 계획을 불러일으키고 목표달성을 향해 나아가기 마련이다. 자칫 아이들을 독려했다가는 정서적 아동학대로 고발당하기 십상이다. 공부를 하려는 아이보다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다수이다.
이 시대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교사에게 어떤 수업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가?
다음 몇 가지도 꼭 감안하시길 바란다.
사례 1. 아이가 잘 모르는데 질문해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단다. 정서적 아동학대란다.
사례 2. 잘한 아이를 칭찬하거나 보상해 주고 자신의 자녀는 긍정적 보상에서 소외받았단다. 역시 정서적 아동학대란다.
사례 3. 수업시간 딴짓을 하여 잔소리를 들은 것으로 아이가 심각하게 위축되었단다. 마찬가지로 아동학대란다.
학부모의 고발 이후 수사단계에서 아동보호 기관은 아동학대로 의견을 게진하고 경찰은 이런 사안을 토대로 조사후 검찰로 송치한다. 불기소율이 높거나 낮거나를 떠나 이 과정에서 교사는 직무해재를 당한다. 급여가 사라지고 변호사 선임비는 고스란히 교사가 떠안아야 한다.
허위 사실이라 해도 고소한 학부모는 털끝만큼의 피해도 없다.
당신이 교사라면 과연 열심히 수업을 준비해서 아이들 학습능력이 발전되도록 부단히 가르칠 수 있을까? 학생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공부를 말이다.
곧은 의지를 갖고 끝까지 일관되게 학생들을 지도한다면 교사는 과연 무사히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교사는 무엇을 위해 또 누구를 위해 열심히 가르쳐야 할까?
불안이 지배하면 논리적 사고는 멈춘다. 생존을 위한 해마만 활성화된다. 살기 위한 본능만 작동한다는 의미다. 교사에게 퍼펙트한 불안감을 안기고 양질의 교육을 바라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욕심이다.
이제 상당수 교사들이 개학 이후 학생들과의 거리를 상당히 멀리 두려 한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를 하는지 확인할 길이 사라진 것이다.
학생들이 수업을 듣거나 말거나 혹은 배우거나 말거나 절대 관여하지 않겠다 한다. 학생과 학부모는 칼자루를 잡고 있고 교사는 칼날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비수가 되어 교사의 가슴에 박힐 위험만 증폭되었다.
지식도 인성도 배려도 이제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 교사가 아닌 부모가 모두 지도하셔야 하는 시대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학부모 스스로이다.
이는 학부모란 위치에서 교사를 상대로 행한 갑질과 오지랖에 대한 댓가가 고스란히 반영된 청구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