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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Oct 24. 2023

멈칫 거리는 이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 집은 참 많은 사기를 당했다. 모르는 사람은 그러려니 해도 형제란 것들이 친동생인 아버지에게 사기를 쳤다는 사실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용납이 안된다. 명절에 봐도 고개만 꾸뻑할 뿐 이런 질 낮은 종자들과는 단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사기 피해로 IMF시절 이층 집을 팔고 반지하 월세로 이사했을 때 그것들은 자기 새끼를 어학연수 보냈다 자랑질을 했다. 나는 힘겹게 과외로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했고 동생 또한 겨우겨우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하며 대학을 다니고 있었음을 뻔히 알고서도 말이다. 사기 친 돈은 단 한 푼도 주지 않고 어쩌면 저리 말할 수 있는지 참 인간 말종 같은 것들이었다. 한참이 흘렀지만, 그것들은 사기 친 돈을 단 일원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것들의 부고 소식에 아버지는 핏줄이니 가셨지만 나는 아는 척도 안 했다. 부의금도 아까웠지만, 대면하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10년 넘게 명절이라 해도 가지 않는다. 앞으로도 서로 마주할 일은 우연히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집구석에서 나온 다음 종자들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것들 덕에 난 사람이나 현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숨은 의도나 다른 꿍꿍이가 있음을 늘 고려한다. 낯선 이에 대한 믿음은 전혀 없다.

 누군가와의 첫 만남이 설레기보다 불편한 이유가 이런 것에 있었음은 근래 들어 알게 되었다.


 상처를 주는 것들은 절대 모를 테지만, 깊은 상처는 처음처럼 아물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흉터가 남지 않는다 해도 사고 전반을 뒤틀려 버린다. 물리적 아픔이 가셨다 해도 짙은 자국은 매 순간 발목을 잡는다. 지지리도 힘들었던 그 시기는 지금 그 무엇으로도 복구되지 못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을 일을 하지 않으려 조심스럽다. 더 주저주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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