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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Oct 31. 2023

무기력의 늪에 빠지다.

이번에는 좀 오래간다.

 빈번히 찾아오는 번아웃인가 했다.

 그건 아닌듯 싶다.

 올해는 뭔가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책의 탈고를 7월 초에 마치고 7월 말에 두번째 책을 출판했다. 더불어 두 개의 글을 이런저런 공모전에 응모하였다. 쉬엄쉬엄 말이다. 해서 번아웃에 젖어들 만큼 바삐 살지는 않았다. (개학전부터 학습 모형을 설계하고 한학기 수업을 재구성 한 뒤 학기가 시작되면 학습 결과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결과값을 정리한 뒤에 연구대회나 공모전에 응모했던 일들을 멈췄다. 20년 넘게 잠을 줄이고 개인 시간을 모두 투자해왔던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였다. 회의가 들었다.)


 정서적 아동 학대로 몰릴까 싶어 열정을 다해 가르치지도 않았고 학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면밀하게 살피지도 않았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다양하게 활동을 하면서도 가르치는 것까지만 신경 쓸 뿐 학생들이 얼마나 배웠는지에 주의를 두려 하지 않았다. 부족함을 직시하는 순간 잔소리는 이어질 것이고 결국 정서적 아동학대로 몰리는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익히 알기에 그러했다. 해서 올해는 교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학생 근처로의 접근을 스스로 통제했다. 다가와서 비비고 매달리는 아이들까지 매몰차게 밀쳐내지 못해 받아주기는 하나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다. 그럭저럭 문제없이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시들시들 버티는 건강도 학기 초 3개월을 이어진 기침 흉통에서 벗어난 이후 조심하긴 하나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한 몸처럼 마스크를 쓰다 보니 아내와 아들에게 닥친 코로나도 홀로 무사히 넘겼다.


 기나긴 무기력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나 싶다. 벗어나려 아등바등하지는 않는다. 그래봐야 힘만 빠질 뿐이다. 버둥거릴수록 더 깊게 무기력으로 빠져든다. 마치 늪처럼 말이다. 탈출구가 보인다면 애를 써보겠으나 이런 내면적 문제에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무기력에 빠진 나를 또 다른 자아가 관망 중이다. 지금은 넘지 못하는 이 삶의 턱도 언젠가 스스로 극복하리라 장담하기에 내버려 둔다.

 나이가 50에 가까워 가고 있음에도 인생 굴곡을 헤쳐나갈 지혜는 좀처럼 커지지 않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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