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갑작스레 맘충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개념상실한 엄마를 뜻하는 이 비속어가 썩 듣기 좋지는 않았다.
이는 아이가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 어른 다운 아량도 찾아볼 수 없음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의 부모 또한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조치를 취하지도 않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맘충이란 말이 더 씁쓸하다.
"벌레 엄마와 허수아비 아빠라니......"
뭔가 개선점을 찾아야 하는데 댓글은 육아에 관심 없는 아빠들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결국 진영을 갈라서서 서로에 대한 비난전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를 보였다. 더불어 아이는 입장할 수 없는 웃기지도 않는 식당까지 등장했다. 어주 요지경으로 나아간다.
제 각각의 가정교육 아래서 자라다 보니 자녀들의 양육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납득하기 힘든 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이 나라에 너그러움은 실종상태 같다.
"놀이동산에 알지도. 못하고 타지도 못하는 아기들은 왜 데리고 와?"
20대 젊은 한쌍의 짜증섞인 대화였다. 아기는 아직 말을 하지 않을 뿐 눈과 귀로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며 학습한다. 정말 뭘 모르는 건 그 20대들이었다.
젊고 늙고를 떠나서 모두 지금과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 다름을 이해 못 하고 사소한 일에 발끈 하는 건 늙으나 젊으나 똑같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목소리만 키우는 것도 꼭 닮아있다. 그렇게 동질성이 짖어 서로를 비난하고 싸우나 보다.
크루즈 뷔페식당에서 본 북유럽인 가족. 서너 살로 보이는 남자아이들 두 명이 접시의 음식을 연신 손으로 주물럭 거린다. 딱히 먹는 것도 아니다. 부모로 보이는 남녀어른은 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보이며 조곤조곤 뭐라 말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 행동의 변화는 없다. 저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가만히 바라본다.
'화를 낼까?' & '그냥 두고 볼까?'
한 시간 남짓의 식사는 아이들의 주물럭 거림과 부모의 부드러운 타이름이 지칠 듯 반복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식사는 마무리된다. 일어서면서 지저분해진 자리를 말끔히 정리하고 나간다.
아이는 잘 모르고 실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그치거나 화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치하지도 않는다. 계속 부드럽게 타이른다. 이 부모들은 분명한 어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