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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Jan 14. 2024

모든 것을 준비시킬 것인가

과욕


 살아가면서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으면 싶은 미련이 있다. 운동 한 가지를 제대로 배웠더라면 악기를 다룰 줄 알았으면 싶은 생각이 들긴 한다.

 기성세대라면 한번 이상 들었을 법한 아쉬움이긴 하다. 딱 여기까지면 좋으련만 이를 본인의 자녀에게 투영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는 적잖이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과연 그 어린 연령대에 감당할 수 있는가이다. 부모 당신들 육체가 자녀와 바뀌면 잘 할성 싶은가 의구심이 든다. 인지적 발달을 논하지 않고도 체력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앞으로의 행복 내지는 잘 살기 위함이라 자녀에게 강요하지만 부모들은 착각한다. 삶은 미래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들의 자녀는 부모들이 꿈꾸는 미래에서 살지 않는다. 빡빡한 일정으로 지옥을 만들어버린 현실에 발을 딛고 있음을 가벼이 여긴다.


 미래는 준비가 불가능하다. 부모가 아는 세상은 극히 일부분이며 그 조차도 모두 과거일 뿐이다. 아이가 장성해서 살아갈 미래는 그 누구도 확언하지 못한다. 준비를 시킨다고 부산을 떠는 짓거리는 모자란 부모들의 욕심일 뿐이다. 그 이상을 논할 가치 자체가 없다.


 해가 가고 아이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들 자신도 막막한 미래를 불안해한다. 소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대부분은 흘러가는 시대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나름 바지런하게 따라간다. 일부는 벅찬 나머지 손을 놓고 수수방관하기도 한다. 분명 아이들 모두 생각이란 것을 하고는 있다.


 부모가 어찌하라 시키거나 나침반마냥 방향을 지시할 수 없는 것이 미래다. 수고했다 격려해 주고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것으로 아이에게 행하는 것은 족하다. 굳이 보다 개선된 미래를 원한다면 아이를 다그칠게 아니라 지금 이 나라와 이 사회의 불합리성을 깨부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엉망진창인 사회 속에서 내 아이에게 잘 살라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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