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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Jan 30. 2024

평가

삶의 일부?


살다 보면 평가는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아장아장 걸을 때는 착한지의 여부

학창 시절은 성적표의 등수

기성세대가 되어서는 직장 혹은 연봉 뿐만 아니라 측정이 안되는 인간성까지 객관적 지표처럼 순위가 매겨진다.


남이 보는 내가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요치 않은 것도 물론 아니다. 외부의 평가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이런 기류는 잘못되었다 해도 바꿀 수 없다.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런 까닭이다. 만일 의도치 않게 미친 것들의 등에 올라타기라도 한다면 나락으로 처박히는 것은 단지 언제 터지는가의 시간문제이다.

긴 치료로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면 찾아가서 지도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해당 학생 집까지 걸어가서 가르치고 되돌아 나왔다. 집에 차가 한대뿐이었던 시절이라 대로변 육교 아래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이것이 엉뚱한 소문의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오솔길과 대로변이 만나는 끝지점에 서 있었을 뿐이었는데 하필 서있던 등 뒤에 모텔이 있었던 것이었다. "왜 매일 퇴근 시간에 모텔 앞에 서 있냐!"는 말은 아내를 통해 듣게 되었다. 나에 대한 평가가 어찌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이후 10여분을 더 걸어서 편의점 앞에서 아내를 기다리기는 했으나  참 기가 막혔던 일이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해명할 수도 없고 그런다고 바뀌지도 않는다. 이런 황당한 일이 앞으로도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웃지 못할 평가도 삶의 일부려니 받아들여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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