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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Feb 04. 2024

나이가 들면 과거를 먹고 산다.

기대가 없다.


술은 마시지 않으나 아주 가끔 피할 수 없는 자리로 알코올내음 넘치는 곳에 앉아있다. 마시지 않으니 냄새 만으로도 취기가 오르는 듯싶다.

알코올 향과 음식 향이 뒤섞인 그 밀폐된 공간은 사람들의 웃음과 울분까지 뒤엉켜 정신이 말짱한 이에게는 어수선함의 끝판 왕인 장소이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나름의 패턴들이 있다. 청장년 층은 미래와 현재를 이야기하는 반면 노년층은 과거를 추억한다. 한마디로 모여는 있으나 서로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는 않는 자아독백 라떼의 향연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미래에 대한 블링블링한 기대감은 희미해져 간다.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때가 훨씬 생기발랄했음에 잊혀진 그 기분들이 아쉽기는 하다. 그럼에도 치열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어 라떼타령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인 듯싶다. 잘 살건 못 살건 나이 든 이에게 확실하게 남은 미래라고는 죽음뿐이다. 죽음에 대해 침울하게 논의하기보다는 나름 찬란했던 각자 젊은 시절을 입에 올리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적잖은 과장과 허풍까지 주입해서 크게 부풀린 추억을 끄집어내서라도 오늘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닐 듯싶다. 네버엔딩이에 골수까지 우릴 정도로 길게도 반복되기에 지루할 수는 있음에도 말이다.


소싯적 모두 공부를 잘했다는 노년층의 말에 여전히 신뢰가 없음에도 나이가 들어가니 아주 조금씩 나 또한 그들이 과거를 먹고 살아가는 행동양식이 서서히 스며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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