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아들은 키즈카페에서 트레일러 자동차를 갖고 놀고 싶었나 보다. 이미 선점한 다른 아이가 가지고 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친구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약속을 잘 지키고는 있었지만 아들의 눈은 슬퍼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에게 물었다.
"트레일러 장난감. 아빠가 사 줄까?"
"응"
아들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또 장난감을 사주냐고 잔소리하는 아내를 뒤로하고 아들을 번쩍 안고는 마트로 뛰어들어갔다.
가족끼리도 상처를 주고 싸운다. 사랑한다 결혼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맹렬하게 싸운다. 한배에서 나온 쌍둥까지도 싸운다. 때때로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나를 힐난하면서 나와 내가 싸우기도 한다. 원인은 간단하다. 내 생각이 늘 옳다고 오판하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을 근거로 행동이 뒤따른다. 삶에서 싸움이 빠지지 않는 다른 이들도 이런 사고와 행동양식에 차이가 없기에 잘못을 분간하지 못하는 분쟁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생각에 대한 신뢰 없이 옳지 않은 행동 표출은 불가능하다. 서로 자신이 옳다는 확고한 신념들은 크고 작은 갈등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옳고 그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크고 작은 다툼은 다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서로 엮이는 우리네 삶은 필연적으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린 잘 혹은 바르게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싸움을 액션으로 몸소 실천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음 속으로 싸운다. 어른들은 이것을 참는 것이라 말들 하지만 지인을 만나면 망상속 싸움 이벤트를 거침없이 풀어낸다.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마음껏 상대를 응징하고 있던 것이다. 결국 싸움은 내 안에서 계속 진행 중인 것이다. 앙금이 남았으니 흔들린 관계가 원상복구될 리 없다.
싸움이 잘 해결돼도 마음에 생채기가 남는 마당에 여전히 진행 중인 싸움이라면 그 인간관계는 끝난 것이다. 매번 싸움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끊어진 관계가 점점 늘어난다. 이해관계에 얽매여 할 수 없이 봐야 할 사이가 아니라면 상종을 안 한다.
싸우는 법을 배우지 않아 어른들의 싸움은 뒤끝이 길어도 너~무 길다. 벌어진 일, 그로 인해 내가 받은 상처를 차분하고도 논리적으로 말하고 상대와 견해를 좁혀가야 하건만 그런 모범적인 싸움(?)은 본적도 겪은 적도 없다. 그래서인가 아들에게는 갈등상황에서 매번 참으라고만 했다. 5학년 때 아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유 없이 빈정거리는 같은 반 녀석을 응징했단다. 참다 참다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올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