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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Feb 25. 2024

신박(?)한 PBL 연수

이게 뭘까?


 프로젝트 수업 연수를 들었다. 사실 깊게 듣지는 않았다. 거만해서나 기피해서는 아니다. 다른 길로 흐를 것이 뻔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가 알았을까! 음식에 비유하면 간단하다. 이탈리아에서 적어도 몇 년을 살아보지 않은 한국인이 맛있는 피자맛을 과연 알 수 있을까? 피자는 그들 나름의 기본이 있고 이 수준을 넘어서야 인정을 받는다고 하니 한국인이 제대로 된 피자맛을 알기 위해선 맛있는 피자와 그저 그런 피자를 구별할 정도의 미각을 키워나가야 함은 필수다.

다시 프로젝트수업으로 돌아가서 연수를 제대로 들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은 강의하는 그가 PBL을 제대로 겪거나 온전하게 가르친 경험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15년 프로젝트 수업을 해온 나의 태생적 한계도 온전한 PBL 경험부재에서 비롯됨을 안다.

대강들은 강의는 수업 재구성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으며 잘한다는 추임새로 모인 교사들의 사기만 북돋고 있었다.

이틀 4시간으로 결과물 도출은 불가능하다. 어찌 재구성은 한다 쳐도 수업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나라 교사들이 친숙한 수업은 객관주의 기반이고 말로만 떠드는 프로젝트 수업은 구성주의를 토대로 한다.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철학적 뿌리부터 바꾸지 않고서는 겉핥는 흉내질만 낼뿐이다.

철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경험해야 하며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해야 한다. 교육철학에 대한 스스로의 헤게모니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질 때나 일말의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이게 그리 쉽게 되리라 보는가?


액기스 뽑듯 핵심만 간추려 전달하려는 이런 시도는 늘 실패를 불러옴을 모르나 싶다. 수많은 연수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변화가 전혀 없음의 원인도 같은 맥락에 있다.

변화를 주도하는 이들도 뭐가 뭔지를 모르고 변화를 실행해야 할 집단도 부족함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니 언제나 답보상태인 것이다.

이렇게 제자리만 맴도는 처참한 수준의 교육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이 정도 발전을 이뤄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다른 나라 교육이 얼마나 정체되었길래란 생각도 든다.


자칫 학생과 학부모 민원에 시달릴까 전전긍긍하는 마당에 엉뚱한 망상을 했지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살아야만 한다. 주어진 몫만 충실히 이행하고 절대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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