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로 날아올라 두 세시간 산다. 그 시간동안 유일하게 하는 일이라고는 종족 유지를 위한 짝짓기 밖에 없다. 짝짓기가 끝나면 죽는다. 하여 이 곤충의 성체는 입이나 소화기관도 없다. 누군가에게 이 개체들의 일생이 어찌보면 허무한 삶으로 비춰질 수 있을테지만 그건 지극히 인간의 주관적 입장에서 바라본 얄팍한 안목에서 기인한 옹색한 사고일 뿐이다.
만일 이 곤총들의 삶과 죽음이 없다면 이를 먹이로 살아가는 먹이 피라미드 윗단계 포식자들은 연달아 개체수 감소를 직면해야 한다. 생각하지 못한 연쇄반응으로 이 강의 생태계는 대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린 학생들의 삶을 현재의 성적으로 기준삼아 섣부르게 잘 살것이다와 잘못 살것이다로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자신의 옹졸하고 얄팍한 안목으로 거침없이 학생들의 미래를 확고하게 단언한다.(그런 말을 하시는 당사자의 삶은 훌륭하신가?)
삶에서 잘 살아왔음이 증명되기 위해서는 잘과 잘못의 중간 지점을 명확하게 규정지을 수 있어야 한다. 도대체 누가 잘도 아닌 잘못도 아닌 중간의 삶을 살았을까? 우리는 자신의 삶 조차도 어설프게 안다. 자신이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체계적인 기억 변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미화시키는 것이 인간이다. 고로 타인의 삶은 전혀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삶은 스스로도 명쾌하게 판단할 수 없다. 하물며 다른 이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그 누구도 섣불리 타인의 삶에 점수를 부여하거나 잘 살았네 혹은 잘못 살았네라 단정할 수 없다.
특정 아이들이 미래에 낮은 곳에서 삶을 영위할 것이라 예견하는건 일반화의 오류일뿐. 그들은 단지 학교라는 경직된 틀에 맞지 않는 학생일뿐인 것이다. 교사는 그들이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으리라 믿어주어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