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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Mar 09. 2024

곁을 내주지 않으려는 이유

직장인이 되기 위함


 난 주위 사람들에게 좀처럼 곁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같은 학교란 직장에 있으면서도 접점이 없다면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목례로 인사만 나누는 정도 뿐이다. 차갑게 보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때늦은 낯가림이라기보다 실없이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친밀감이 낮다. 같이 엮이면 한해  불편하지 않게 그럭저럭 관계를 형성한다.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 선뜻 먼저 찾지 아니한다. 그래서 핸드폰에 전화번호조차 그 해에 꼭 필요한 사람만 저장해 두고 해가 바뀌면 지워버린다.


"여보세요."

핸드폰은 연락이 오면 누구인지 나타나건만 난 매번 이런 식으로 전화를 받는다.

"또 전화번호 지웠죠!"

이건 나를 조금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아이들에게도 다르지 않다. 작년 녀석들은 여전히 마주치면 달려들어 나를 와락 끌어안는다.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하루가 멀다 하고 수업이 끝나면 쪼르륵 찾아온다.

 정작 올해 마주한 아이들과는 대면대면 하다. 시간이 되면 수업을 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자리에 앉아 일을 하거나 다음 시간 준비를 한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작년처럼 아이들이 접근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교사는 직업일 뿐 곁을 내줄 이유는 없다. 오해를 살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싫다. 작년에는 좋다고 매달리는 아이를 매몰차게 밀쳐내지 못해 내버려 두었던 것이 문제였다.

 올해는 다가올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한다. 하루하루 성의껏 가르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마음 편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보려 한다.

 물가로 소를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먹고 안 먹고의 여부는 소에게 달려있다 했다. 가르침까지는 교사인 내 몫이고 배우고 안 배우는 것은 학생 개개인의 몫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집까지 가져와 고민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미련함을 버리려 한다. 성직자도 아닌 내가 왜 그리도 오래 아이들을 마음에 품었나 싶다. 1년이 지나면 연락처를 차단할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학생들을 일로 대하고 퇴근 후에는 끝내는 태세 전환이 필요하지 싶다. 곁을 내주지 않아야 내가 하루 8시간 노동하는 교사라는 직장인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스승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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