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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Mar 24. 2024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은 진술서로

내가 끌어안아야 할 이유는 없다.


잘 어울리기가 3교시 교과서 차시 주제였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두 녀석이 같이 울고 있다. 뭔가를 봤는지 아이들은 이 흥미진진한(?) 사건을 말하려 우르르 몰려든다.

학급에서 갈등이 벌어졌을 때 매뉴얼은 간단했다. 일단 학급 경찰 역할 아이가 사안을 확인한다. 양쪽 화해가 가능하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 화해가 안된다면 진술서를 작성하게 된다. 진술서는 사건 일체에 대한 기록과 어떤 조치를 원하는지 쓰도록 되어있다. 각 가정에 알리겠다는 의미이다.


학급 경찰 역할을 맡은 아이를 불러 직업이니 가보라 했다. 사건 조사와 화해여부를 타진했지만 학급경찰 아이는 해결 불가능이라 한다. 결국 진술서를 작성하라 했다. 피해 학생은 울면서 열심히 쓰지만 가해 학생은 쓰기 싫다며 고집을 부린다. 가만히 기다리니 끄적거리기는 하는데 몇 자 쓰다가 진술서 종이를 꼬깃꼬깃 구겨버린다. 양쪽 집에 모두 진술서를 보낼 것이고 쓰지 않으면 피해학생 입장만 반영되어 불리하지 않겠냐며 의사를 타진했다. 걸레처람 구겨진 종이를 다 쓴 것이라며 제출하기에 이걸 어떻게 사진으로 찍어서 전송하냐 반문한 뒤 다시 새 종이에 작성하라 했다.


8살짜리 진술서라 해도 참 기가 막혔다. 피해 학생은 다시는 막대기로 목을 찌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했다. 목이 너무 아프다고 말이다. 해 학생은 자기가 사과를 했는데 받아주지 않아서 속이 상했단다. 미안함이 아닌 서운함이라니 앞으로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나 싶었다.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의 사과는 받아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양쪽 가정에 알려 달란다. 이 말을 들은 가해 학생은 자기는 집에 알리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한다. 난 이 부분에 있어서는 피해 학생 말을 들어줘어 한다며 단칼에 잘랐다. 계속 궁시렁거림을 들으면서도 양쪽 집에 학생들이 작성한 진술서를 찍어서 보냈다.


개입할 필요도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되는 이런 일에 내가 대처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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