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아내를 지웠다.

아내에게 한소리를 듣다.

by Aheajigi

"선생님 언제 차 한잔 사드릴게요."

일로 논의할 것이 있어 방문한 다른 학년 연구실에서 대강 일을 마무리하고 수다에 몇 마디 보태다 이런 말을 들었다.


'갑자기?'

학기 초라 일면식도 없는 그분에게 난데없는 말을 듣고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네. 언제 시간이 되면..."

대강 얼버무리고 자리를 떴다.


집에 오니 아내가 전화를 붙잡고 까르르 넘어간다.

'뭐 좋은 일이 있나?'

전화를 끊고는 나에게 한소리 한다.

"뭐라 말하고 다녔으면 사람들이 홀로 아들 키우는 홀아비인 줄 알았다잖아!"


'이건 뭐지?'

차를 사겠다던 그분이 아내와 통화한 것이었다. 그분은 아내와 같이 근무하기도 했고 그분의 언니와 내가 같이 근무했었다. 세상 참 좁다. 그분은 내가 아들 양육에 대한 말을 잘하길래 엄마가 없는 줄 알았단다. 그분이 언니와 통화하다가 내 이름을 듣고 부인이 누구인 줄 알았단다. 그분은 내가 홀아비인 줄 알고 아들 홀로 키우느라 불쌍해서 차 한잔 사준다 말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아내에게 말했던 것이었다.


아내도 같은 직종에 있다 보니 난 밖에 나가면 아내에 대한 말을 잘하지 않는다. 누구의 남편과 누구의 아내가 지칫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실수 잦은 나의 과오가 아내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 있기에 늘 조심했던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홀아비 코스프레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한번은 아내의 국외 출장으로 홀로 육아를 전담해야했다. 일주일 연가를 쓴 김에 아들과 단둘이 제주도로 육아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할머니가 사장님이신 식당에 들어갔다. 백반과 생선구이를 시켜서 먹고 있는데 인자해 보이시는 사장님께서는 메뉴에도 없는 반찬들을 내어주셨다. 보말 미역국, 김, 게란 후라이까지 계속 추가되었다.

"엄마는 같이 안왔어?"

"네. 엄마는 해외로 공부하러 갔어요."

사장 할머니와 8살 아들의 대화를 듣고 추가 반찬의 속뜻을 알았다.

주말도 아닌 평일 점심에 아들과 아빠의 여행이 뜻하는 건 누가봐도 이상했던 것이었다. 거기다 엄마가 해외에 있다니 사건 많은 아침드라마 스토리 그 자체였다.

할머니는 내 아들이 안쓰럽게 보였던 것이었다.

'어린 것이 이제 엄마도 없이......'

이렇게 내가 드라마 주인공 대접을 받을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서 관광지를 갈때마다 다른 분들이 사진을 찍어주냐고 먼저 우리한테 말을 건네셨구나 뒤늦게 알아챘다.


'이혼 후 아들과 단둘이 여행을 제주도로 온 홀아비'

남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나와 아들의 모습이었던 것이었다.


이튿날 지나가다 그분을 우연히 마주쳤다.

"자기가 OO이 남편이라면서? 언제 차 한잔 사요?"

이제는 나보고 차를 사란다. 이번 차 한잔에 또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지 상상도 안간다.


앞으로는 아내 이야기도 종종 섞어야 겠다. 이런 웃지 못할 일을 또 만들수 있을지도 모르니.


본의 아닌 아빠의 실수로 멀쩡한 엄마를 두번이나 지웠다. 아들! 엄마 없는 아들을 만들어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