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교실은 서로 얼굴에 웃는 호박 모양이나 괴기스러운 캐릭터 타투 스티커를 붙이는 아이들로 활기가 흘러넘쳤다. 방과 후 학원에 가면 사탕이나 초콜릿을 나눠줄 것이라는 말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탄이는 학원을 가본 적도 없었고 이런 희한한 날이 있는 것도 조금 전에 알았다. 모두 할로윈 데이라고 한껏 들떠 신나 있었지만, 탄이는 오히려 이런 흥에 겨운 날에 철저하게 소외된 기분이 더 들었다. 홀로 쓸쓸함만 옴팡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기대 찬 흥분과 소란이 뒤섞인 산만스러운 하루가 끝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텅빈 교실에는 캄캄한 망망대해에 외로이 홀로 빛나는 달처럼 탄이만 덩그러니 남았다.
‘뭐라도 해야 느지막이 돌아가는데….’
몸도 마음도 편치 않은 곳으로 서둘러 돌아가기 싫었다. 언제나처럼 산더미같이 쌓인 일만 할 것이 뻔했다. 탄이는 늦게 갈 수밖에 없는 그럴싸한 핑계거리가 필요했다. 그때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가 교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목사 가족의 부려 먹기로 노동이 손에 익어서였는지 탄이는 힘들이지 않고 느릿느릿 쓰레기를 주우며 청소를 했다. 탄이의 사부작거림에 쓰레기통은 쓰다 남은 스티커와 먹고 버린 간식 포장지로 가득 찼다. 넘칠 듯이 아슬아슬한 쓰레기를 발로 꾹꾹 누른 뒤 쓰레기봉투 끝을 동여매었다. 대강 정리가 되었고 더 할 일이 없다 싶어 가방을 들쳐 메고 학교를 벗어났다.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오후 4시, 학교 앞 분식점 대다수도 장사를 접었다. 간판까지 빛바랜 낡은 떡볶이 가게만 빠끔히 열린 문틈 사이로 희미한 빛을 흘려보냈다. 오래된 떡볶이 가게를 지나려는데 달달한 떡볶이 향이 강하게 풍겨왔다. 탄이는 침을 꼴깍 삼키며 가게 앞에서 머뭇거렸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아가, 안으로 들어오렴.”
허리가 구부정하신 할머니의 다정스런 부름에 탄이는 조심스레 떡볶이 가게 문턱을 넘었다. 할머니께서는 초록색 접시에 새빨간 떡볶이를 한 접시 가득 담아 식탁에 내려놓으셨다. 탄이 보고 앉으라며 손짓으로 말씀하셨다. 탄이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리 앉아서 언능 먹어봐!”
“제가 돈이 없어서….”
“팔고 남은 것인데 이 할미가 주고 싶어서 그래.”
탄이는 할머니께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하고 식탁에 앉았다. 거절해야 하는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떡볶이의 유혹을 도저히 물리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온기가 있는 음식을 한입 베어 무니 얼어있던 가슴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은은한 달달함과 과하지 않은 익숙한 매콤함이 혀에 닿자 돌아가신 할매가 해주신 정성 가득한 떡볶이를 먹었던 추억을 되뇌게 만들었다.
‘떡만 골라 먹지 말고 배추도 한번 먹어봐~아!’
‘으~응. 싫은데….’
‘이 할매 소원인디?’
‘할매! 소원은 이런 시시한 것 말고 큰 것!’
할매와 이별 뒤 메말랐다고 생각했던 탄이의 눈물이 흘렀다.
“너무 맵나보네. 여기 물이 있으니 마시고.”
“네. 감사합….”
오래 잊고 있었던 친숙한 맛과 한동안 들을 수 없었던 정감어린 말을 듣자 탄이의 눈물은 더 왈칵 솟구쳤다. 울컥한 감정의 울림에 말을 제대로 이을 수 없었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떡볶이 사이에 있던 배추 한 조각을 잘라 입에 넣었다. 돌아가신 할매가 그렇게 먹어보라 잔소리를 했던 배추를 처음으로 씹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안 먹는다고 고집을 피웠을까?’
탄이를 지켜보시던 할머니께서는 흐뭇하게 웃으셨다.
“그래도 잘 먹어서 다행이네.”
“너무 맛있어요.”
“아이고 배추도 잘 먹어서 기특하네. 다른 아이들은 다 건져내던데”
“돌아가신 할매가 만들어주신 떡볶이에도 있었어요.”
“그랬구나.”
“그땐….”
할머니께서는 탄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셨다.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탄이도 떡볶이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탄이가 감사 인사를 건네고 일어서려 하자 할머니는 주섬주섬 앞치마 주머니를 뒤적이시더니 꼬깃꼬깃 포장지에 담긴 물건을 꺼내 건네셨다. 무엇인지 몰랐지만, 감사히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꾸벅 인사를 드리고 두 손으로 받아 가방에 넣었다. 탄이는 오랜만에 따스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환한 미소로 가게 밖을 나서는 탄이를 배웅해주시는 할머니를 보며 탄이는 계속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현하며 뒷걸음쳤다.
어두침침한 방이 그래도 오늘 저녁만큼은 환한 듯 느껴졌다. 탄이는 할머니께서 주신 선물 포장지가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뜯었다.
“이게 뭐지?”
꺼내 보니 새것처럼 보이는 할로윈 타로가 12개 붙어있는 빛바랜 스티커였다.
‘오늘 애들이 가지고 놀았던 그것이구나!‘
웃는 호박 모양이 괴기스럽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귀엽기도 했다. 어디 둘 곳은 없었고 잘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낡은 가방 속에 넣었다. 목사 가족의 외식과 늦은 귀가로 탄이는 오랜만에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탄이도 간만에 수업을 제대로 들었다. 수업 시간은 정신없이 훌쩍 흘러가 버렸고 어느새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또래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교실에서 탄이는 이곳저곳 천천히 거닐 듯 다니며 걸레질을 했다. 이미 교실 바닥은 반짝거릴 정도로 빛이 나고 있었지만 청소를 멈추지 않았다.
“탄아?”
“예?”
“우리 탄이 덕분에 교실에 깨끗해졌네. 선생님이 정말 고맙다. 시간이 늦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지?”
“네….”
가기 싫은 곳으로 향하려니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털레털레 학교 정문을 나섰다.
“휴~우”
탄이는 집으로 돌아가면 오늘 또 무슨 일을 얼마나 해야 하루가 마무리될지 생각하니 한숨만 나왔다.
“아가!”
탄이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낡은 떡볶이 가게를 바라보았다. 길 건너 떡볶이 가게 할머니께서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냉큼 달려가니 할머니는 떡볶이 한 접시 먹고 가라며 방긋 웃으셨다.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가슴 포근해지는 찰나의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