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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여린 약자에게 더 가혹했다.(7)

괴롭힘의 시작과 어리둥절한 사건

by Aheajigi

2주가 채 지나지 않을 무렵, 노동과 가을 새벽 서늘한 추위에 씨름하다 지쳐버린 탄이가 교실 책상에 널브러지듯 엎드려 있었다. 누군가 탄이의 코앞으로 기다란 과자 봉지를 쭉 내밀었다.

“이거 먹을래?”

오랜만에 달콤한 과자를 보니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근래 들어 학교에서는 마음 깊은 상처만 받아왔던 터라 탄이는 또래의 선의를 섣불리 믿을 수 없었다. 설령 그것이 진심이라 할지라도 친구들에게 무엇인가를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답례로 줘야 한다고 할매로부터 배웠다. 탄이는 지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내어줄 형편이 아니었다. 또래에게 무엇인가를 받고 나서 마음이 불편해질 바에야 아예 처음부터 받지 않는 것이 속이 편하다고 판단한 이유도 있었다. 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받지 않겠다고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과자를 주려고 했던 은서는 탄이의 고갯짓을 보고서 내민 손을 거둔 뒤에 팔짝팔짝 뛰며 금세 다시 다른 아이들 와글거리는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머릿속으로는 ‘잘했다’ 생각하면서도 탄이의 마음 한구석은 쓰렸다. 과자 하나 편하게 받지 못하는 자신의 형편이 아렸다.



철구는 이런 탄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오른쪽 입꼬리를 올린 철구가 슬금슬금 움직이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멀찌감치 물러섰다.

“야! 전학생! 빼빼로는 먹어봤냐!”

빼빼로 주고받는 날도 모르고 이런 과자를 먹은 적도 없을 것이라며 놀려댔다. 이때 낡고 헤져 틈이 벌어진 탄이의 가방에서 할로윈 스티커가 살짝 삐져나왔다. 햇볕에 반사된 눈부심에 친구들의 시선이 탄이의 낡은 가방 쪽으로 쏠렸다. 탄이의 가방에서 할로윈 스티커를 덥썩 뽑아 든 철구는 또 박장대소를 하며 비아냥거렸다.

“푸하하! 이거 왜 이렇게 낡았어! 이미 지난 거잖아!”

“빼빼로 데이에 할로윈이라니! 늦어도 너무 늦었네!”

“이건 또 어디서 주웠냐!”

철구와 어울리는 한 떼의 무리들이 탄이를 놀려대는 수위를 점점 올렸다.

“맞아! 이거 내가 지난번에 쓰레기통에 버렸던 것 같은데!”

철구의 마지막 한마디에 주먹을 불끈 쥔 탄이가 의자를 획 밀어내며 일어섰다. 철구도 화들짝 놀라 잠깐 멈칫했지만, 탄이가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이내 다시 비아냥거림을 이어갔다.

“내 것이니까 맘대로 해도 되지?”

탄이의 스티커 하나를 떼어내 옆에 있던 연철이 손등에 붙이고 또 하나는 철구 자신의 이마에 붙였다. 잠시 뒤 웃는 호박 모양의 캐릭터 그림이 피부에 스며들듯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어? 없어졌다!”

“뭐야! 스티커도 불량이네!”

놀림은 점점 더 더해졌다.

“하여튼 스티커도 탄이스럽네!”


탄이 얼굴은 점점 달아올랐고 숨까지 가빠졌다. 화를 내면 싸움으로 번질 테고 목사에게 연락이 갈 것이 뻔했다. 지금도 산더미 같은 일이 힘에 겨운데 더 보태기는 싫었다. 아무 변명도 할 수 없는 형편인 자신만 불리할 것이 훤히 예상되었다. 탄이는 참고 뒤돌아섰다. 이것으로 끝나나 싶었지만 들끓어 오르는 탄이의 피까지 진정되지는 않았다.

‘틈만 나면 시비를 걸어오는 쟤들의 입을 당장 틀어막았으면.’

탄이는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속으로 말했다. 새끼손톱에서 화끈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야! 왜 그래!”

“쟤 뭐 하는 거야?”

같은 반 또래들의 일렁임에 탄이는 힐끗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철구와 연철이가 들고 있던 과자를 잔뜩 입에 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얄밉게 조잘대던 입은 숨 쉴 틈도 없이 과자로 가득했다. 입이 찢어질 듯 아팠는지 철구와 연철이는 끙끙거리며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괴롭힘에 동참했던 무리들이 두 녀석 팔을 잡아 말려보지만 철구와 연철이 손은 계속 과자를 자기 입에 밀어 넣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큰 사고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탄이의 눈에 철구 이마와 연철이 손등에서 번쩍임이 보였다.

‘불편하다. 이제 소란이 멈췄으면.’

탄이가 속으로 생각하자 철구와 연철이의 손이 자신들의 입에서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반짝이던 빛도 홀연히 사라졌다. 콜록거리며 입속 가득 침에 불어 죽처럼 변한 과자를 뱉어내니 소란스런 쉬는 시간이 끝났다.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탄이는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했고 철구와 연철이는 처음 겪는 일에 깜짝 놀라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종일 흐린 하늘처럼 탄이 기분도 우울했다. 뭉그적거리며 느지막하게 학교를 벗어나는데 떡볶이 할머니가 빙그레 웃으시며 탄이에게 손짓을 하셨다. 고개를 푹 숙이고 슬픈 표정으로 다가가자 할머니는 말없이 탄이를 안아주셨다.

“힘들지?”

할머니 한마디에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주름 가득한 할머니 손은 연신 탄이의 눈물을 닦아주셨다.

탄이는 학교가 끝나면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 듯 낡은 떡볶이 가게를 향했다. 학교에서 그랬듯 이제는 할머니의 떡볶이 가게를 청소해 드렸고 간간이 들어오는 꼬마 손님들도 응대했다.

“어서 오세요. 어떤 것 드릴까요?”

“컵떡볶이 3개요.”

“탄아! 할머니가 정말 고마워.”

손님이 뜸해지면 할머니와 마주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과 같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잔잔하고 마음이 편한 곳이 있어 좋았다. 바짝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이 짧은 시간은 시원스레 숨을 쉴 수 있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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