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스티커가 내 마음처럼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되는 몇 주가 지날 무렵 교실은또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운동장이 보이는 창가 주위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앞에 두고 ‘산타가 있다와 없다’로 편이 갈려 또래들 간에 큰 소리의 논쟁이 벌어졌다.
“코흘리개 아기님! 몇 살인데 아직도 산타를 믿어?”
“정말 있단 말이야!”
“엄마나 아빠가 거짓말을 하신 거라고. 잠자는 척 기다려보면 안다니까!”
출입구 앞에서는 이번 크리스마스 때 어떤 선물을 받을 것 같다는 자랑 경연대회가 펼쳐졌다.
“최신 휴대폰 사달라고 해야지!”
“난 게임기를 받을 것 같은데.”
“선물도 필요 없고 학원 숙제만 사라지면 좋겠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을 앞둔 설렘에 들떠 교실은 수다로 와글와글했다. 탄이는 빈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떡볶이 할머니께 드릴 크리스마스카드를 정성스레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물함에 비스듬히 기댄 철구가 턱을 치켜들고 게슴츠레 탄이를 바라보았다. 입꼬리를 씰룩 올린 뒤 친하지도 않은 탄이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올리면서 말을 걸었다.
“백지 채우느라 애쓴다. 가게에서 카드 하나 사면 될 것을 뭣 하러 이러냐!”
탄이는 돌아보지 않고도 매번 시비만 걸어오는 철구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챘다. 탄이는 철구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넌 크리스마스에 어떤 선물을 받을 것 같아?”
‘또 시작이냐!’
보나 마나 또 놀려댈 것이 뻔했기에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선물을 받는다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의미 없는 말을 보태고 싶은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탄이를 둘러싼 환경은 무엇인가 받을 것이라는 손톱만큼도 기대조차 용납하지 않는 형편임을 잘 알고 있었다.
철구는 고개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탄이를 위아래로 훑었다. 거칠거칠 갈라진 손등, 소매 끝이 헤지고 낡은 옷,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보고는 피식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탄아! 혹시 알아 구멍 난 양말이라도 걸어놔 봐!”
“양말이 구멍 나고 더럽게 악취까지 나서 산타랑 루돌프가 코를 잡고 도망치느라 선물을 못 줄 것 같은데!”
철구의 놀림을 시작으로 그 옆에 연철이까지 낄낄거리고 거들었다. 카드를 만들면서 활짝 웃으실 떡볶이 가게 할머니를 기분 좋게 상상했던 탄이의 환한 마음을 철구와 연철이는 여지없이 심드렁하게 망쳐놓고 말았다.
‘저 녀석들의 코가 루돌프처럼 빨갛게 변했으면 좋겠네.’
탄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자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가 떨어지며 부서진 날개 조각이 철구와 연철이의 코에 정통으로 맞았다. 철구의 오른쪽 콧구멍과 연철이의 왼쪽 콧구멍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사람 루돌프 등장이요! 킥킥킥!”
붉게 달아오른 철구와 연철이 코를 보며 짓궂은 또래들 몇몇이 깔깔대고 웃었다. 잔뜩 찡그린 철구의 이마와 연철이 손등에서 번쩍이는 할로윈 캐릭터가 탄이의 눈에 또렷이 보였다. 새끼손톱의 화끈거림도 또 다시 느껴졌다.
“뭐야!”
“그만 웃어!”
철구는 천장을 바라보며 버럭 화를 냈고 연철이는 놀리는 친구들에게 소리쳤다. 연달아 일어나는 해괴한 일에 철구와 연철이는 탄이를 의심하며 째려보았다. 하지만, 의자에 앉아있는 탄이가 마법을 부리지 않는 이상 팔이 닿지도 않는 천장에 선풍기를 떨어트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철구는 애꿎은 책상을 걷어차며 분풀이를 했다.
오후가 되자 하늘이 꾸물꾸물 변하더니 부슬부슬 손톱만 한 눈송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바깥세상은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으로 온통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강아지처럼 통통 튀며 소복하게 눈이 쌓인 운동장으로 곧장 내달렸다. 탄이는 잔뜩 신이 나서 달려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부러운 시선으로 잠시 바라보았다. 탄이는 맨살로 파고드는 차디찬 바람을 막으려 옷깃을 여미고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눈덩이들이 탄이에게로 날아들었다.
“퍽! 퍽퍽!”
온몸에 눈덩이를 맞은 탄이가 고개를 돌리니 콧구멍을 솜으로 틀어막은 철구와 연철이, 그리고 몇몇 말썽꾸러기들이 재미있다고 낄낄거리고 있었다.
“하하! 하!”
“아이고 미안해라!”
“눈을 던졌는데 하필 거기로 가네!”
“절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킥킥!”
맞상대하면 또 귀찮아질 것을 예견한 탄이가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탄이가 발끈하기를 기대했는데 그 반응이 아니었다 싶었는지 철구와 일당은 더 많은 눈덩이를 탄이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허공을 가른 여러 개의 눈뭉치가 이번에는 탄이의 머리를 정확하게 맞췄다. 탄이는 뒤통수에 붙은 눈을 툭툭 털어내며 겉으로는 태연하게 참는 듯 보였지만, 주머니에 꾹 찔러 넣은 손은 불끈 움켜쥐었다. 탄이는 지그시 눈을 감고 몇 번 깊게 심호흡을 했다.
“야! 탄이 그만 괴롭히라고!”
어디선가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번에 초코 과자를 주려고 했던 은서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탄이 대신 발끈했다.
“둘이 사귀는 거야?”
“여보? 그런 사이?”
“오~ 잘 어울리는데.”
빈정대기에 재미를 붙인 녀석들이 탄이 뿐만 아니라 은서까지 놀리기 시작했다. 철구 일당의 놀림에 은서는 울음을 터트렸다.
“우린 사실을 말한 건데 왜 울지?”
“그러게! 킥킥!”
탄이는 틈만 나면 누군가를 괴롭힐 생각만 하는 녀석들이 제대로 골탕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희들이 나쁜 행동을 할 때마다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
낄낄거리고 웃던 녀석들은 탄이를 눈으로 뒤집어씌우려 양손 가득 눈덩이를 움켜쥐고 달려왔다. 맨 앞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하던 철구가 제 다리에 걸려 앞으로 엎어지면서 뒤따르던 무리까지 볼링핀 쓰러지듯 와장창 뒤엉켜 넘어져 버렸다.
“아~악! 철퍼덕!”
“어~어! 콰당!”
“야~야!”
말썽꾸러기들이 눈밭에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속이 후련하다는 듯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하하하. 너희들 진짜 재미있게 논다.”
”개그맨인 줄~!”
“푸하하. 웃느라 배꼽이 빠질 것 같아.”
철구와 그의 친구들은 아픔과 창피함에 눈물을 흘렸고 탄이는 쌤통이다 싶어 미소를 지었다. 편을 들어준 은서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주위에 몰려서 괜찮냐고 묻는 또래들이 잔뜩 있었기에 다가서지 못했다. 힐끗 바라보니 철구의 이마와 연철이의 손등이 지난번처럼 또 반짝이고 있었다. 할머니께 받았던 스티커의 캐릭터가 분명했다. 새끼손톱도 화끈거렸다.
‘또 빛이 난다! 손톱이 뜨끈뜨끈 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탄이는 종종걸음으로 교실을 벗어나 떡볶이 가게로 향했다. ‘임시 휴업’이란 글자와 함께 떡볶이 가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할머니께 선물로 주신 할로윈 스티커에 대한 궁금함을 꼭 물어봐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