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이 캄캄한 방에 누운 탄이가 말똥말똥 눈을 뜬 채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있었다. 잠 못 드는 이유가 이불을 파고드는 한겨울 차디찬 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연일까? 마법일까?’
안팎에서 누군가로부터 계속 집요하게 괴롭히는 일도 당황스러웠지만, 탄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일이 연이어 실제로 일어나는 것 또한 의아했다. 단순한 우연이라 치부하기에 미심쩍었다.
‘묘한 생길 때마다 철구의 이마와 연철이 손등은 반짝였어. 새끼손톱도 화끈거렸고.’
“맞다.”
탄이는 방에 불을 켜고 가방을 뒤졌다. 할로윈 타로가 10개 붙어있는 스티커를 찾아냈다. 천천히 스티커에 봉숭아물이 든 새끼손가락을 가져다대었다. 스티커가 반짝이기 시작했고 손가락이 서서히 따뜻해졌다.
“어?”
탄이는 깜짝 놀라 스티커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뭔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분명했다.
“맞아! 철구가 연철이 손등에 붙이고 자기 이마에 붙였네. 그리고 모양이 반짝거렸어!”
탄이는 할로윈 타로 스티커가 자신을 괴롭히는 누군가의 행동을 계속 막아 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아니 간절히 기대됐다. 만일 할로윈 스티커가 괴팍한 사람을 탄이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게 도와준다면 괴롭고 힘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어둡고 난감한 일들로부터 드디어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니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탄이는 괴롭힘이 사라진 앞날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가슴에 품은 할로윈 스티커와 새끼손톱의 반작임이 탄이를 감싸주었다.
“탕! 탕탕!”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 유리창이 깨질 듯 두들겼다.
“빨리 나와!”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자 탄이는 잠이 번쩍 깼다. ‘누굴까? 왜 부르지?’ 이유를 생각할 틈도 없었다. 갑작스런 소음과 신경질적 목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신발도 신지 못한 채로 헐레벌떡 바깥으로 향했다. 계단 끝에 올라서자 목사 아내가 팔짱을 끼고 탄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왜 이렇게 굼떠!”
목사는 계단에서 올라온 탄에게 호통 치며 말했다.
“5분 안에 씻고 당장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 알았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지만, 곧장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시작했다. 곧이어 마당에서 와글거리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목사와 낯선 이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한참 인사를 나누는 듯했다.
“구원님! 은서 가족입니다.”
희끗희끗 흰머리가 난 퉁퉁한 아저씨가 한 가족을 목사에게 소개했다.
“어이쿠! 반갑습니다.”
“목사님! 아차차 아니 구원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희를 위해서 이렇게 새 가족 환영회란 행사를 열어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편하게 부르세요. 이렇게 만난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데요. 당연히 환영해 드려야지요. 금방 가겠습니다. 따끈하게 차 한 잔씩 드세요.”
잠깐 인사를 나눈 은서 가족은 신도들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향했다.
“저희는 1층 성전에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이쪽으로 가시지요.”
목사 아들 현이가 쿵쾅거리며 집안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욕실 앞 형광등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무엇이 현이를 이끌었다. 현이는 탄이의 낡은 옷을 빗자루로 뒤적였다.
“에이! 더러워!”
현이가 코를 움켜쥔 채로 탄이가 벗어놓은 옷을 헤집어 반짝거리는 스티커를 찾아냈다. 호기심에 스티커 한 개를 떼어 자신의 손바닥에 붙였다. 현이는 이내 반짝이는 스티커가 손바닥 안에서 연기처럼 사라지자 흥미를 잃었는지 남은 스티커를 바닥에 휙 내동댕이치고는 다시 후다닥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샤워기 물줄기가 잦아들고 젖은 머리를 한 탄이가 욕실에서 허겁지겁 나왔다. 서두른다고 했는데 5분은 이미 훌쩍 지나버렸다. 목사의 꾸지람이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또 어떤 가늠조차 되지 않는 일을 시킬지 그것이 불편할 뿐이었다.
‘어? 스티커가 왜 주머니 밖에 나와 있지?’
탄이는 바닥에 떨어진 스티커를 낡은 바지 주머니에 얼른 넣고 행사용 옷을 대강 입으면서 밖으로 내달렸다. 2층, 1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모두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탄이의 머리카락은 잠깐의 호된 찬바람에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허름한 옷가지를 지하에 대강 던진 뒤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미 모임은 시작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