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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여린 약자에게 더 가혹했다.(10)

아주 잠깐의 기대

by Aheajigi

목사는 자신을 신의 대리자이자 만인의 구원자라 소리 높여 외쳐댔다.

“제가 신께 물었습니다.”

“구원님 만세!”

신도들은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린 뒤 울부짖으며 화답했다. 이 광경을 처음본 것이 아니었지만 탄이는 사람들이 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실내 등이 모두 꺼지고 목사가 서 있는 뒤로 커다란 스크린이 내려왔다. 극장처럼 환한 빛이 나오더니 수학 시간에나 볼법한 차트가 어지러이 보였다. 목사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자립이라 소리치자 신도들도 따라 했다. 목사가 말을 시작하려 하자 실내는 다시 고요해졌다.

“신이 저에게 오늘도 주식과 부동산 관련 정보를 알려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말입니다.”

“아멘! 아멘!”

목사가 한마디 할 때마다 신도들은 아우성을 쳤다.

“신이 이런 하찮은 소식을 제게 주시는 까닭은 진정으로 여러분을 잘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번창하라! 번창하라!”

모두가 내지르는 소리에 탄이는 귀가 먹먹했다. 노래방에 갔던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면 속이 후련해진다고 했는데 그런 것 때문은 아닐까 막연히 추측했다. 탄이는 이곳에 모여 있는 어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몰랐다. 하지만, 목사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나눠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거짓말일 것이라 확신했다. 탄이는 여기 모인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세세하게 관심을 쓸 여유가 없었다. 행사 이후에 이어지는 청소가 걱정되었을 뿐이었다. 딴 생각에 잠긴 채로 이들이 말하는 소란스런 예배 속에서 혼자만의 휴식을 취했다.

“새 가족 환영회를 위해 신께서 알려주신 종목은 비상장 거래 중인 OOO이란 회사입니다.”

“할렐루야!"

"상장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하니 다들 인내하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아멘!”

“그리고 좋은 소식 전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와 한 가족이 된 분들을 소개합니다.”

“환영합니다.”

“새 신도님들 일어서서 인사한번 해주세요.”

“다시 한 번 새로 우리 가족이 된 신도님들을 환영하며 이것으로 새 가족 환영회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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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성이 잦아들면서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행사는 시작한지 겨우 30분 만에 끝이 났다.

“은서 아버지는 잠시 남아주세요.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명 한명 악수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며 신도들이 떠나는 것을 배웅한 목사는 곧바로 출입문을 닫았다. 목사는 힐끗힐끗 주위를 살피며 오늘 처음 온 가족에게 향했다.

목사가 은서 아빠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다른 가족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은서와 은서 엄마가 마당에 서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다. 사람들이 떠나는 모습을 확인한 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을 쉬며 지하로 내려갔다. 언제나 그랬듯이 낡은 옷을 갈아입고 마당으로 향했다. 실외에 널브러진 의자와 나뒹구는 종이컵 쓰레기가 보였다. 쓰레기를 봉투에 넣고 테이블 위에 위자를 뒤집어 올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은서가 미간을 찌푸리고 마당에 나타난 허름한 아이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바삐 청소를 하고 있었다.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낯이 익어 보였다.


“탄아~”

밝게 빛나는 햇살 때문에 탄이는 자신을 부르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손바닥으로 볕을 가리고는 차츰 가깝게 다가온 이가 은서란 사실을 알아챘다. 이런 초라한 모습을 들키다니 창피했다. 사뿐사뿐 걸어오는 은서를 보면서 탄이는 돌아서서 다시 달아나야 할지 아니면 가볍게 인사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멀뚱멀뚱 서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어쩌다가 친구를 보고도 반갑기보다 도망갈지 말지를 고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씁쓸했기 때문이었다. 탄이의 입에서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갔다. 코끝이 찡한 것이 추위 때문인지 서글픔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거 받아!”

어느새 은서가 탄이 코앞에 서서 손을 쭉 내밀었다. 탄이는 재빨리 눈물을 삼키고 은서 손을 바라보았다. 은서 손에는 사탕 봉지가 있었다.

“난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 너도 그랬으면 해.”

달큰한 향은 사탕 봉지가 아니라 방긋 웃는 은서에게서 나는 것 같았다. 탄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은서는 탄이 주머니에 간식 봉지를 꾹 찔러 넣었다.

“엄마가 먹을 것을 나누면 친구라고 했어. 이제 우리 친구다.”

은서는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전학을 온 뒤로는 인사를 나눌 또래도 없고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친구도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탄이였다. 얼마 전부터 떡볶이 가게 할머니가 반갑게 대해주셨고 이제 은서까지 친구를 하자고 하니 조금씩 예전처럼 봄이 다시 찾아올까라는 기대가 꿈틀댔다. 희망이란 것이 생기자 자연스레 얼굴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어~ 탄이 웃었다.”

탄이는 생글생글 웃는 은서를 보며 작게 혼잣말을 했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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