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문이 열렸고 목사 모습이 보이자 탄이는 재빨리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은서 아빠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작별인사를 나누던 목사는 탄이가 남루한 옷을 입고 외부인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자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미간을 찡그렸다. 강씨 아저씨, 연씨 아줌마와 귓속말을 잠깐 나누고는 탄이 쪽으로 고개를 다시 돌렸다.
보는 눈이 있어 소리치지 않았을 뿐, 목사는 눈짓으로 탄이에게 분명히 화를 내고 있었다. 목사는 얼른 다가와 아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탄이를 은서에게서 몸으로 떨어뜨렸다. 탄이는 목사 귀가 붉게 달아오른 영문을 몰랐지만, 얼른 자리를 피해야만 할 것 같았다. 몸에 밴 습관처럼 지하 방으로 내려가려다 목사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
“탄아, 2층으로 가야지?”
목사는 코앞에 은서와 몇 발짝 떨어진 은서 엄마를 살피고는 가식적으로 다정한 척하며 탄이에게 말했다. 탄이는 황급히 방향을 바꿔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우리 탄이가 착해서 이런 것 치우지 말라고 해도 자꾸 말을 듣지 않네요.”
목사는 은서 엄마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목사님께서 선하셔서 그런가 봐요.”
은서 엄마는 은서를 꼭 끌어안으며 목사의 말에 응대했다.
“민망하게 낡은 작업복은 왜 자꾸 꺼내 입는지….”
은서 가족이 떠나는 것을 배웅한 목사는 쿵쾅거리며 2층으로 향했다.
“야! 당장 나와!”
화가 가득 난 표정으로 소리 쳤다.
“너 정신 안차려? 그리고 그 여자애랑 무슨 말을 했어?”
“...”
“무슨 말 했냐고?”
보통은 이러다 말겠거니 했을 테지만 오늘은 유달리 격앙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에 가만히 있다가는 또다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빨리 말 안 해!!!”
점점 더 거칠게 추궁하는 목사를 보며 하는 수 없이 탄이가 한마디 했다.
“별말 안 했어요.”
“후~우!”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목사는 삿대질하던 손을 허리춤에 올렸다.
“눈치가 없어?”
“...”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의아했기에 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 앞에서 지저분하게 입은 꼴 들키지 말라고 했지.”
“…….”
“꼴도 보기 싫으니 내려가서 청소나 해!”
핏줄도 아닌 아이를 잘 챙기는 척을 해오고 있었는데 거적때기 같은 옷을 입은 탄이 모습을 들켰으니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이 숙소에서 좋은 이야기라고는 들은 적이 없었기에 탄이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마음이 더 깊게 가라앉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일에 또 상처를 받다니 겪어 본 적 없는 불행이 친숙했던 행복의 자리를 꿰차기까지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 듯싶었다.
탄이는 애꿎은 돌멩이를 멀리 걷어찬 뒤 1층으로 들어갔다. 마당만큼은 아니었지만 이곳저곳 엉망이었다. 출입구 쪽부터 물건을 정리하고 의자 줄을 나란히 맞춰갔다. 바닥에 쓰레기가 보이면 주머니에 꾹 찔러 넣고 계속 청소를 이어갔다. 젖은 밀대 걸레로 바닥을 닦았고 마지막으로 손 걸레질을 하려 수돗가로 나갔다. 소름 돋는 차디찬 물에 걸레를 빨려니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머리가 찡할 정도의 통증이 손에서 팔을 타고 머리로 올라갔다. 젖은 걸레질을 끝으로 할 일은 3시간의 청소는 대강 마무리되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이곳에서 잠시 쉴까 싶어 탄이는 교회 단상 뒤에 기대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목사 부부가 갑자기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눈에 띄면 또 무슨 일을 시키겠거니 싶어 잘 보이지 않는 귀퉁이로 숨어들었다.
“기쁜 소식이야!”
“응? 뭐가?”
“잘하면 크게 한 건 하겠어!”
“정말? 뭔 대?”
“오늘 새로 온 가족 말이야!”
“그렇게 돈이 있어 보이지는 않던데.”
“에이, 겉보기랑은 달라.”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강씨, 연씨 알지?”
“아, 강집사하고 연집사?”
“집사는 무슨 돌팔이들이지. 하여튼 오늘 데려왔잖아.”
“그래서?”
“그래서라니 둘이 꼬드기고 바람 넣어서 오늘 데려온 사람 있잖아.”
“그런데?”
“재산이 제법 있다고 귀띔을 해주더라고.”
“오호! 정말? 땡잡았네!”
“잘 구슬리면 크게 한탕하고 이곳을 떠날 수 있겠어!”
“여보! 잘 해봐요. 은서 아빠라고 했나?”
“헙!”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어?”
목사 부부의 대화를 엿듣던 탄이는 깜짝 놀라 입을 꼭 틀어막았다. 아내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말에 유심히 주위를 살피던 목사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의심 어린 눈초리를 거두었다.
“쥐가 있나보네. 신경쓰지 말고 이런 날 한잔 하러 갑시다.”
목사부부는 한껏 신난 모습으로 다시 나갔다. 탄이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몰래 엿들었다는 긴장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필 은서 가족이 피해를 입는다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탄이 심장을 벌렁거리게 했다. 맹수 같은 목사가 은서 아빠를 물어뜯을 꼼수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은서 아빠의 피해는 고스란히 은서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고 밝게 웃는 은서의 웃음도 탄이 자신처럼 곧 사라질 것이 뻔했다.
“부엉~ 부엉”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오늘 저녁 유난히 더 크게만 들렸다. 탄이는 은서를 위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