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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여린 약자에게 더 가혹했다.(12)

소중한 친구가 불행하지 않았으면

by Aheajigi

“바스락, 바스락”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던 탄이가 이리저리 뒤척이다 주머니에서 나는 소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탄이는 누운 채로 스티커를 꺼내 들었다.

‘이 스티커를 잘 쓰면 은서에게 닥칠 불행을 막을 수도 있을지 몰라!’

“근데 어떻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탄이는 피곤함이 몰려와 잠이 들었다.


들고 뛰어다녔던 또래들이 어쩐 일인지 미용실 집 아들 창연이 주위에 몰려 귀를 기울였다. 철구와 연철이가 대형 사고를 쳤다는 이야기를 미용실에서 들었다며 이야기꾼처럼 목소리 변조까지 해가며 열정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 두 명의 사고뭉치는 나이 많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 대낮에 몰래 들어가 는 돈을 넣어두는 금고를 들고 달아나는 엄청난 일을 벌였다고 했다. 무거운 금고를 들고 허겁지겁 밖으로 달아나던 탓에 주위를 기울이지 못했는지 길모퉁이에서 배달하는 오토바이와 정면으로 부딪혔단다. 결국 철구는 팔이 부러지고 연철이는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다 했다. 결국 병원에 입원했고 경찰이 찾아갔다는 소식으로 동네가 시끌시끌한 모양이었다.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렸고 팔이 부러진 철구와 함께 가방을 멘 아저씨가 보였다. 숙소에서 보았던 강씨 아저씨였다. 뒤이어 다리가 부러진 연철이가 보였고 휠체어를 밀면서 등교를 돕는 아줌마가 보였다. 목사와 귓속말을 주고받던 연씨 아줌마였다.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고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철구와 연철이는 반친구들을 노려보았다.

묘한 긴장감이 흐름도 잠시 첫째 시간이 끝나자마자 여느 때보다 훨씬 더 들떠있었다. 교실은 물론이고 복도까지 또래들의 대화로 와글와글 시끄러웠다.

“와~ 너무 좋다.”

“나도 나도”

“드디어 방학이다.”

“좋기도 하겠다. 난 별로네.”

“왜?”

“학원만 잔뜩이다.”

“공부도 못하면서”

“너 나랑 싸우자는 거냐!”

“응, 아니야!”

“그래도 난 학교에 오지 않아서 좋은데.”

또래들의 소란함을 비집고 탄이가 교실 안으로 들어서서 자리에 앉았다. 웃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은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주머니 속 스티커를 만지작거렸다.

‘어쩌지?’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한 은서가 갑자기 획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탄이와 눈이 마주쳤다. 탄이는 고심하는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은서의 시선을 얼른 피했다. 은서가 벌떡 일어나더니 탄이한테 다가갔다. 철구와 연철이도 무슨 작당을 한 것인지 서로 귓속말을 나눈 뒤 탄이와 은서가 있는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앗! 아파”

“이거 누가 던졌어?”

그때 난데없이 날아온 자신의 필통에 철구는 눈두덩이가 시커멓게 멍이 들었다

“어? 이거 내 건데!”

연철이도 이마에 볼록하게 혹이 났다. 철구와 연철이는 누구 짓이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철구와 연철이에게 붙어 있는 스티커가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보니 나쁜 생각을 한 것이 분명했다. 누가 감히 자신들을 괴렵히냐는 생각에 화가 나고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깁스를 한 두 녀석은 눈과 이마를 어루만지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은서는 뒤를 힐끗 보더니 별 관심이 없다는 듯 탄이에게 할 말을 건넸다.

“탄아! 오늘 우리 집에 올래?”

“엄마가 방학이라고 친구들 불러서 간식파티 해주신데.”

“너도 같이 가자.”

“그게…….”

“너 떡볶이 좋아하잖아. 우리엄마 떡볶이 얼마나 맛있는데.”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지?’

“다른 친구들도 간다고 했는데 탄이 너도 왔으면 좋겠어.”

내내 거의 신경 쓰지 않았던 허름한 옷이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였다. 활짝 웃는 은서에게 도리도리를 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으나 불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은서에게 만큼은 잘 보였으면 좋겠는데…….’


은서 그리고 은서가 초대한 친구들 무리와 섞여 교문 밖을 나섰다. 할머니의 떡볶이 집은 오늘도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걸까?’

탄이가 생각에 잠겨 멈칫하자 은서가 탄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빨리 가자~”

어쩌다보니 은서 집에 들어섰다. 열 개 남짓한 돌계단을 올라서자 넓은 마당이 나타났다. 드나드는 통로는 디딤돌이 바짝 말라있었지만 옆으로는 치우다만 눈이 제법 많이 쌓여있었다. 마당을 지나 저만치 이층집이 보였다. 차가운 목사 집과는 또 다른 모습에 탄이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아이들 무리에 휩쓸려 현관에 이르렀고 문이 열리자 여러 음식 냄새가 흘러나왔다. 은서 엄마는 중문을 열고 반갑게 아이들을 맞이해 주셨다.

“어서와! 다들 반짝반짝 빛이 나네.”

“안녕하세요.”

“아직 준비가 덜 되었으니까 은서는 친구들에게 집안 이곳저곳을 소개해줄래?”

“네”

침실과 서재 그리고 은서 방 모두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탄이는 곳곳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며 엄마와 아빠가 함께하는 사랑 넘치는 가족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우리 딸, 준비 다 되었어.”

은서 어머니가 여러 음식을 차려주시고 재미있게 놀라고 하신 뒤 자리를 비켜주셨다. 은서처럼 하얀 생크림 케이크에 촛불이 환하게 빛났다. 밝게 웃는 은서를 위해 신나게 생일 축하 노래를 함께 불렀고 수많은 접시들을 깨끗하게 비웠다. 은서 방에서 여섯 남짓한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하며 웃음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탄이도 한동안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다. 오랜만 이어서였을까 탄이는 웃을 때마다 오른손으로 입 주위를 가렸다. 은서를 따라 웃고 있는 자신의 눈을 알아채지 못한 채로 말이다.

오랜만에 가득찬 배가 화장실로 가자며 탄이를 재촉했다. 탄이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황급히 방을 나와 거실을 가로질러 갔다. 배를 비우고 손을 씻다가 기쁜 분위기로 깜빡 잊고 있었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떠올랐다. 반드시 은서 아빠에게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었다. 그래야 은서 아빠가 목사의 꾐에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은서아빠가 안계신데 어쩌지?’

탄이는 엄지손톱을 앞니로 뜯으며 화장실을 맴돌았다. 탄이는 은서아빠를 만날 일이 앞으로도 없을 것을 알았다. 은서 집에 온 오늘 밖에는 기회가 없었다.

‘아! 맞아!’

탄이는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스티커를 아빠만 이용한다는 서재 문손잡이에 위에 거꾸로 올려두었다. 아빠 말고는 서재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말에 이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탄이는 마음속으로 은서아빠가 악랄한 목사와 만나거나 연락할 일이 절대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빌었다. 탄이의 새끼손톱과 손잡이 위에 올려둔 스티커가 밝게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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