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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May 30. 2024

난해하고 난감하다.

교사인가? 보육사인가?


소외되어 가는 아이가 있다. 타인에 의한 멀어짐이라기보다는 상황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의 자발적 선택이다. 아이 스스로는 이 조차도 인식을 못한다. 난해하고 난감한 이유이다.


가벼운 놀이조차도 잘 따라오지 못한다. 설명이라고는 귓등으로 듣는 산만한 아이들도 눈치껏 파악하는 수준의 게임이었다. 특수학급 아이도 나아갈 방향과 상대와 마주쳐서 해야 할 일을 일을 알고 있다. 이 녀석은 정반대 방향으로 뛴다. 가위 바위 보를 해야 하는데 엇박자로 손을 흔들고 있으니 계속 늦게 손을 내민다. 몇 번의 설명에도 달라짐은 없다. 시청각적 정보가 뇌에서 처리되어 다시 행동으로 옮겨지는 데 있어 분명 뚜렷하게 다른 아이들과 차이를 보인다.


흐르는 콧물은 내버려 두거나 겉옷으로 닦는다. 세면대에서 닦으라 말해도 달라짐은 없다. 소매부터 지퍼 부분까지 콧물로 얼룩이다. 콧물을 휴지로 닦으라 누군가 쥐어주니 닦은 휴지를 먹고 있는 식판에 올려두고 밥을 먹는다. 이를 지켜본 다른 아이들 표정이 심상치 않다.


마스크를 쓰고 있기에 몰랐는데 유치가 대부분 썩었단다. 이를 닦지 않으니 새로 나오는 영구치도 온전할 리 없다. 음식물 섭취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맥락 없이 운다. 물어봐도 대답은 없다. 긴급하게 상담을 요청한 결과 그냥 슬픈 생각이 나서 울었단다. 신발장 앞에서 & 의자에 앉아서 & 화장실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표면적으로 이 녀석을 밀어내거나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벽은 또렷이 보인다.

이 아이를 누구와 어울리게 할 수 있을까? 분명 앞서 열거한 것들이 불편한 아이들이 있다. 이것을 참으면서 함께 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나는 교사라서 챙기지만 학생들이 다른 누군가를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이 어울릴 상황을 자연스레 만들어보려 시도하지만 의자에 앉는 것조차도 잔소리를 해야 하는 이 녀석은 전혀 반응이 없다. 혼자 멀리 떨어지려 다른 곳을 향하거나 웅크려 앉는다. 계주 경기를 설명하고 시키니 내내 한가로이 걷다가 바톤은 내동댕이 친다. 기다리던 또래들은 한숨을 쉬거나 못 본 척한다. 그런 와중에서도 이 녀석은 무엇인가를 만지고 혼잣말을 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깊게 빠져 있다.


수업시간이면 의자에 앉아서 책을 꺼내야 한다고 3개월째 수업시간마다 5번 이상씩 같은 말을 한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책상 위에 잡다한 물건들만 올려둔다. 단 한 번도 알아서 앉고 책을 꺼낸 적이 없다. 수업은 고사하고 그 시간에 내가 학생으로서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탑재되어 있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행해야 할 것들에 대한 지도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 생활을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가늠 중이다. 물론 견적은 나오지 않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보다 기초생활습관 탑재가 먼저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성급하게 또래 관계를 형성하겠다고 나서면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직접 개입하지 않는 이유이다.


여기저기 들쑤신 탓에 양육자와 연락이 되었고 진단검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인지와 정서에 대한 결과가 나와야 객관적 이해가 가능할 듯싶다. 양육자와 대면을 해야 대략의 상황 유추가 가능한데 그것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학생들 스팩트럼이 워낙 넓다 보니 내가 어디까지 개입을 해야 하나 싶다. 분명 교사는 교과를 가르치는데 전념해야 하건만 난 보육 영역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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