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를 탑재한 교사들의 착각
직업과 삶을 분리해야 한다.
열심히 하는 교사들이 있다. 유명세로 드러난 이들도 있고 수면 아래서 복작이는 이들 또한 있다. 전부를 만난 것은 아니니 일반적임은 절대 아니다.
'이게 뭐 가르칠 게 있다고.'
전공자가 아닌 이들이 보는 초등학생 교과서 수준이다. 표기된 지식은 폭도 깊이도 넓거나 깊지 않다. 중학생 교과서는 고등학생 눈으로는 정말 쉬워 보인다. 내용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교과서 내용의 난이도 때문에 대학이나 대학원까지 졸업한 전공자들이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배우는데 대부분 수동적이란 이 확고한 틀 때문에 교사가 필요한 것이다. 학습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고려하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서는 배워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어 차이가 있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자 치면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허다한 이유도 학습자들의 본능인 수동적 태도에 있다. 내 아이 한둘도 이럴진대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교사들이 정말 그리 쉬워 보일까 싶다.
열심히를 탑재한 교사들은 직장 내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 착각한다. 교사가 노력을 더 하면 학생들의 학습이 올라가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반발들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잘 자랐으면 하는 바람에서 행했던 지도가 민원 내지는 아동학대로 몰리고 있는 현실에서 열심히 하는 교사들이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 의구심이 든다.
열정이 상처로 되돌아오면 이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교사는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일 뿐이다. 교문을 벗어나면 교사라는 짐도 벗어버려야 한다. 삶은 교사로서가 아닌 나로서 하고픈 것들을 행하며 지내야 한다.
교사란 직업이 인생 전체를 덮어버리면 이것이야말로 외통수다. 삶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고요할 틈이 없는 격랑 치는 짙은 바다로 발을 내딛는 꼴이다.
교사는 학생이 만나는 사람 중에 극히 일부일 뿐이다. 학습이나 행동 양식은 양육자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오랜 기간 전수받은 것이기에 절대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던지 매 순간의 선택은 당사자의 의지다. 학생들의 암담한 선택 결과 또한 스스로의 몫일뿐이다. 직업으로서 조언과 안타까움이 되어야지 인간적인 자책이나 미안함으로 남지 않아야 한다. 속을 끓이고 고심한다면 그런 소모적 일들로 인해 멀쩡한 다른 학생들이 소외되고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 누구도 아닌 내 가족에게 쏟을 에너지가 손실됨을 각인하였으면 한다.
학교 밖에서는 아는 채도 하지 말라 한다. 해가 바뀌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우린 모르는 사이라 학생들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주어진 것을 학교 안에서 잘 가르치려 애써보고 나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나 아이들에게 미련을 두지 않고자 한다.
직업을 삶이라 착각한 24년의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은 3번의 폐렴 입원, 담석으로 인한 담낭 제거, 그리고 백혈구 일종인 호산구의 높은 수치뿐이었다. 나 같은 미련한 교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끄적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