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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화통 터질 때

아직도 명쾌하지는 않다.

by Aheajigi

술도 입에 대지 않고 담배는 손에 쥐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사람을 즐겨 만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가끔 울화통이 터지는 날일 마주하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이젠 그냥 걷는다. 도저히 참기 힘들면 조퇴를 해서라도 걷는다. 화가 머리꼭지까지 올라가면 일은 손에 잡히지 않기에 버텨봐야 소용없음을 자각했다.


삭히거나 참는 게 능사는 아니다. 화란게 사그라드나 싶지만 다른 곳에서 터지던지 아니면 스스로를 병들게 할 뿐임을 병실에 드러눕고서 깨달았다.


화를 자주 내는 편은 아니다. 그랬다면 가족관계도 서먹서먹했을 테고 가르치는 꼬맹이들이 매미처럼 달라붙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가끔 끓어오르는 화는 나를 참 불편하게 한다.

걷다 보면 숲이 나오고 하늘 올려다보고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어가며 족저근막염으로 올라오는 통증까지 느끼다 보면 가슴속 묵직한 것을 잊는다. 불필요한 스트레스거리에 집중했던 마음이 맑은 외부 자극으로 떠내려가는 느낌이다.


살아가는데 타인과 조우가 매번 매끄럽고 원만할리는 없다. 갈등은 필수이고 황당한 상대의 행실에 분노가 치미는 것을 넘기거나 피하기는 힘들기 마련이다.


삶에 완벽한 모범 정답은 없다. 그랬다면 살아가는 지침서가 존재했을 것이다. 삶은 언제 변곡점에 이를지 모른다. 얼마나 큰 언덕과 절벽이 있는지 짐작도 못한다. 닥치고 나서 까지도 해롱거리고 뒤돌아 볼 때나 사건의 극히 일부분만 파악하기 마련이다. 감정에 따라 주체하지 못하는 내 감정 탓에 울화통도 어떤 시점에 방아쇠를 당길지 가늠하기 어렵다.


수학 문제 풀듯 삶이 명쾌하면 좋으련만 자욱한 안갯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싶다. 나만 이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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