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적 수학 단원 평가다. 스스로 얼마나 알고 있고 또 모르는 것을 찾아내기 위함이라 분명 말했다.
거창하게 자리를 옮기거나 가림판을 세우지 않은 것은 진단의 의미라 표명했기 때문이다.
답을 보여주고 스스로 체크하라 했다. 정답보다 오답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매번 강조해 왔다. 나름 한다는 녀석들도 몇 개씩 틀렸다며 다시 풀기를 하고 있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라 했더니 성실한 녀석 몇은 들고 나와 물어본다.
실력을 뻔히 아는 녀석이 한가로이 놀고 있다. 고칠 문제가 없냐 물었더니 모두 맞았단다. 일제히 아이들 시선이 쏠린다. 정말이냐 몇 번을 물어도 그렇다길래 시험지를 보자 했다. 수학 문제인데 풀었다는 흔적이 없이 깨끗하다. 마치 정답만 옮겨 쓴 것처럼 말이다.
한 문제만 다시 풀어보자 했고 문제를 칠판에 적었다. 좀 푸는 흉내를 내더니 결국 틀린다. 전혀 어렵지도 않은 기초적인 문제였다.
조금 전에 풀어서 맞았던 문제인데 어떻게 틀릴 수 있는지 되물었다. 대답을 안 하고 딴청을 피운다. 그럼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겠다 했더니 그제야 보여주는 답을 옮겨 썼다 고백한다.
편하고 순쉬움만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만 가득한 녀석이다. 양육자는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성실한 아이라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틀린 문제를 다시 고심하는 것이 귀찮아 풀지도 않는 녀석이다. 거기다 당당하게 다 맞았다는 먹히지도 않을 거짓말을 그 얕은 머리로 내게 하고 있다. 어디가 성실하고 어떤 면이 착한 것인지 난 모르겠다.
콩깍지가 씌운 상태에 이견은 절대 들리지 않는다. 아이에 대한 나의 새로운 견해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에 입을 닫는다.
초등학교 2학년에 이 정도라면 앞으로 더 놀라운 일들을 많이 만들어 갈 것이다. 지금은 태동 단계라 콩깍지 씌운 양육자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다. 머지않은 시간이 되면 분명 이 문제들이 꽃을 피울 것이다.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챌 것이다. 대처불가 상태로 말이다.
몇 년 뒤가 충분히 예견되지만 절대로 알리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냉철한 사실은 어떤 이에게 날카로운 흉기처럼 받아들여 질 수 있음을 안다. 그에 대한 앙갚음 또한 덤으로 딸려올 테고 말이다.
이런 부류의 아이들은 계속 편하고 손쉬운 꼼수를 쓰는데 머리 쓰기를 집중한다. 행여나 꼼수가 발각되면 또 다른 방안을 모색하고야 만다. 절대 노력을 통해 정도를 걷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은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사회로 진출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취업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도 어렵지 싶다.
이 녀석의 미래를 잿빛으로 예견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