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로 Jul 30. 2024

결혼과 이혼사이 - 너 때문에

부부클리닉 상담일지

'우리는 결혼 3년 차 부부다. 신혼은 결혼 한 몇 년 차 부부까지 신혼일까? 우리는 신혼일까?'


남편과 부부 클리닉에 가기로 했다. 

내가 이런 곳에 갈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남편하고 같이 가는 게 어디야,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같이 상담받길 거부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군말 없이 같이 가주는 남편한테 고마웠다. 

아니 사실 고맙지 않았다. 너 때문에 가는 거야 너 때문에...


오늘은 첫 상담을 가는 날이다. 

오후 3시 예약되어 있었고 나는 아침 9시에 일어났다. 

여유 있군.

눈뜨자마자 강아지 산책을 나간다. 

내 일상 루틴 중 하나다. 

가볍게 산책하고 들어와서 강아지 밥을 주고 회사 업무를 봤다. 

남편은 전날 혼자 늦게까지 핸드폰을 하다 잔 것 같다. 

11시가 넘어가니 남편이 일어났고, 

조금 뭉그적거리다가 아점을 만들었다. 

얼마 전부터 유튜브로 집에서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매직랩에 싸서 샌드위치를 만들면 야채도 듬뿍 넣을 수 있고

카페에서 만든 것처럼 반으로 커팅해서 예쁜 플레이팅도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전 날 마켓 컬리로 필요한 재료들을 주문해놨었다. 

이게 맞나? 샌드위치 만들기는 아리송하면서도 재밌었다. 

"여보!! 나 다 만들었어 빨리 와봐! 먹어봐 이거 빨리!!"

첫 작품은 예쁘게 반으로 잘라 남편과 반반 나눴다. 

맛보고 다음 샌드위치에 어떤 걸 줄이고 어떤 걸 더 넣을지 생각하려고 했다. 

근데 남편은 까치집 머리를 긁으며 한 손에 폰을 놓지 못한 채로 말했다. 

"매직랩 그거 그렇게 쓰는 거 맞아? 그게 얼마짜린데.. 일반 랩으로 해야 되는거 아냐?"

순간 나는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그냥.. 그냥 좀 잘 먹겠다고 하면 안 돼? 

맛있겠다 처음 보는 메뉴네? 여보가 진짜 한 거야~? 

이렇게 말해주면 안 돼? 

대체 넌 뭐가 문제니.

나는 너보다 두 시간이나 먼저 일어나서

강아지 산책하고 일하고 아점 만들고

내가 지금 너 자다가 일어나서 폰 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을 혼자 했는데 고작 너는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했다. 

여보,, 그냥 좀 맛있겠다 해주면 안 돼? 너무하네.. 

"이거 재료 남은 거 여보 다 먹어.. "

두 번째 샌드위치는 없었다. 입맛이 뚝 떨어져 만들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남은 치킨텐더 두 개를 접시채로 남편한테 주고 나는 뒷정리를 했다. 

내가 기분 상한 걸 눈치챈 건지 못챈 건지 

속도 없는 남편은 샌드위치 반쪽을 다 먹고

혼자 야무지게 치킨 텐더까지 다 먹었다.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샌드위치 때문에 시간이 촉박해졌다. 

후다닥 세수만 하고 나와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미리 씻은 남편은 어김없이 소파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다. 

"여보, 강아지 산책 좀 해줘. "

우리 부부의 암묵적인 루틴이다. 

강아지를 차에 태우기 전 가볍게 집 주변을 돌며

쉬야 한번 하고 차에 태우기. 

상담받는 동안 언니에게 강아지를 잠시 맡기기로 했기 때문에

강아지 짐까지 챙겨서 나가야만 했다. 

그런데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준비를 다 하고 나오자 남편은 갑자기 어제부터 쌓여있던 택배를 뜯고 있었다. 

"이게 뭐지??"

네가 시킨 거고, 네 이름으로 온 건데, 네가 모르면 누가 알겠니? 

라고 말하고 싶은걸 참고, 모르겠는데~ 여보 꺼던데?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속에서 또 화가 치밀었다. 

그걸 왜 지금 뜯고 있어 어제 뜯던가. 이따가 뜯던가

지금 강아지 산책하고 빨리 출발해야 되는데..

결국 또 내가 한다. 내가 하고 만다.

뭉그적 거리는 남편을 뒤로하고 혼자 강아지 짐을 챙겨 데리고 나간다. 

그렇게 혼자 또 분을 삭이며 차에 탔다.

그리고 생각했다. 

상담받기로 하길 백번 천 번 잘했다고.


예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문자 속 글자들은 나에게 말했다. 예약시간 10분 전까지 도착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예약시간에 딱 맞게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다. 

그래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앞차가 들어가지 않는다. 

차 번호판이 인식이 안되어서 바가 올라가지 않고 있다. 

앞차 차주는 당황했는지 차를 뒤로 살짝 빼기도 하고

내려서 둘러보기도 하고 허둥댔다. 

"기계가 고장 났나? 왜 저럴까? 우리도 저러면 어떡해? "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내가 말했다. 

남편은 저 차가 앞차에 너무 바짝 붙어 급하게 들어가서 저렇게 된 거라고 대답했다. 

뭐야, 자기 잘못이네 쯔쯧. 왜 저럴까.

바로 비난의 문장들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요새 참 답답한 사람들이 많다. 왜 저럴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겨우 앞차가 통과하고 우리는 별 탈없이 주차장에 들어섰다. 

시간은 이미 5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상담 센터였다. 

"아,, 네 주차장이에요 금방 들어갈게요"

전화를 끊으니 남편이 말했다. 

"앞차 때문에 늦는다고 말해~"

"에이 됐어.. "라고 말했다. 

꼭 말하기 어려운 건 날 시키지,, 자기가 말하지 왜? 

부정적인 반응이 내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또 머릿속을 채운다. 

후.. 심호흡을 하고 애써 생각을 지운다. 

이전 01화 결혼과 이혼사이 - Prologu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