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클리닉 상담일지
상담실에 도착했다.
상담 선생님은 매우 인자해 보이는 여자분이셨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우리 부부의 신상을 물어보셨다.
형제자매가 몇 명인지, 부모님은 살아 계시는지, 몇 년생인지
가벼운 질문과 대답들이 오가고 나서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적었던 설문지를 보셨다.
현재 심리상태, 서로가 어느 부분이 잘 맞고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설문지였다.
나는 전체적인 현재 상태는 약간 불행하다 였는데,
상세한 부부관계는 나쁘지 않다 괜찮다로 표시를 했고
남편은 본인의 상태는 나쁘지 않다 괜찮다였는데
항목별 부부관계는 거의 다 나쁨으로 표시를 했다고 말씀하셨다.
씁쓸했다.
나는 나 자신은 힘들지만 우리 관계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고 싶었는데
남편은 본인은 힘들지 않지만, 와이프가 많이 힘들어하는 걸 보니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나를 뺀 남편 생각이 궁금했다.
나의 평소 불만이 저거였기 때문이다.
본인은 괜찮지만 와이프가 괜찮지 않다고 하니.
나만 불편한 관계
내가 힘들어하니 불편한 관계
나만 아무렇지 않으면 아무 문제 없는 관계
나만 놓으면 되는 관계
생각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나는 여태 그 흘러가는 물줄기를 끊어내기 바빴다.
아니야 우리 남편도 나 사랑해, 우리 남편도 여전히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 그럴 거야 아마.
상담이 중반을 넘어가며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와의 대화에서는 논리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아니 애초에 말을 거의 하지 않는 남편이
또박또박 선생님께 자기 불만을 얘기한다.
내가 자기를 힘들게 한다고 말한다.
자기가 왜 힘든지 얘기한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반론했다.
"그거 지난번에 사과한 거잖아,, 그거 그때 이후로 그래서 내가 안 하잖아.. "
결론적으로 우리 둘이 있을 때와 똑같은 흐름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전문가인 선생님은 적절히 끊어가며, 타이밍 좋게 서로의 의견도 바꾸어 물어봐 주셨고
그리고 내 편을 들어주지 않으셨다.
나는 남편이 선생님께 나를 이르는 것 같아서, 선생님 또한 내 편을 안 들어주는 것 같아서
너무 서러웠지만, 사실 나 또한 선생님께 남편을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은 이렇게 제가 울고 있어도, 본인 때매 울고 있어도 전혀 달래주거나
휴지 한 장 건네지 않아요.. "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내분 속상하신 마음 이해 갑니다,, 하지만 남편분도 상당히 힘드신 것 같아요.
지금 아내분을 달래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예요. 아내분이 우는 걸로 현재 힘든 마음이 표현되는 거라면
남편분은 반대로 아내분의 표현에 대응하지 못하는 딱딱한 모습으로 현재 힘든 마음이 표현되는 거예요"
순간 벙쪘다.
'너는 어떻게 내가 너 때문에 울고 있는데 날 안 달래줄 수가 있어??
내가 다른 거 때문도 아니고 너 때문에 우는 거라고 너때문에!!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냐??'
내가 얼마 전 싸울 때 울며 남편에게 한말이다.
남편도 같은 이유였다.
'나도 너 때문에 지금 화나서 머리가 굳어버린 거야 너 때문에.
대체 네가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모르겠어 나보고 뭘 어떡하라는 거야'
우리 둘은 마치 거울과 같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사람이 손가락을 올리며 삿대질을 하는 순간
상대방도 똑같이 손가락으로 삿대질하며 서로를 탓했다.
그래 남편은 힘들지 않은데, 일부러 날 힘들게 하려고 그런 게 아냐
남편 또한 진심으로 화가 나고 서운하고.. 본인도 본인 나름 힘들었던 거야..
우리는 TCI 검사, SCT 성인 문장완성검사, 다면적 인성검사 이렇게 3가지 검사 숙제를 받고
첫 번째 상담을 끝냈다.
끝내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상담받기로 하길 백번 천 번 잘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