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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로 Jul 31. 2024

결혼과 이혼사이 - 저녁의 의미

부부클리닉 상담일지

그때가 결혼하고,, 1년쯤 됐을 때였나..

남편은 쉬는 날이었고 나는 출근을 했다. 

남편은 MBTI P 답게 갑자기 머리를 하러 가겠다고 했다. 

파워 J 인 나는 가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지만

결혼 전에 한 다짐을 나는 항상 잊지 않았다. 


'사람은 다른 거지, 서로 틀린 게 아니야. 

결혼하면 치약 짜는 모양새 하나로도 크게 싸운다던데,, 

그건 서로 다른 거지, 서로가 잘못한 게 아니야'


나는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P 인 남편과 J 인 나는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다. 

"그래~ 머리 잘하고 와~"

점심쯤 짧게 끝난 이 대화는 오후 늦게까지 오지 않은 답장으로 멈춰있었다. 

6시에 퇴근하고 남편한테 다시 카톡을 보냈다. 

"어디야? 뭐 하고 있어? 나 회사 끝났는데!!"

"응 나 머리 중"

"아,, 몇 시쯤 끝나?? 저녁은 어떡하지?"

"여보 먹고 싶은 거 먹어~ 나 머리 좀 늦게 끝날 듯"

흠.. 몇 시에 갔길래 늦게 끝난 다는 걸까.. 

내가 6시면 회사가 끝나고 7시쯤 집에 도착하는 걸 알면서

그 시간 맞춰 머리 하면 좋았을 텐데.. 

아냐 아냐 나는 이해할 수 있어. 이게 뭐 별거라고..

그럼 내가 저녁을 포장해서 남편 끝날 시간 맞춰서 세팅해 놓고 같이 먹으면 되겠다!

대학교 시절 친구랑 즐겨 먹던 닭발을

남편과 연애하고 결혼한 이 순간까지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었다. 

남편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먹지 못한다. 


'흥 그래도 오늘은 자기가 늦었으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


신나는 발걸음으로 한신포차에 가서 닭발을 포장했다. 


'우와 이게 얼마만이야,, 진짜 맛있겠다

닭발은 졸여가며 먹어야 제맛이지!!'


평소 잘 쓰지 않던 버너까지 꺼내서 닭발 먹을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8시가 넘어서야 남편이 집에 왔다. 

집에 온 남편은 끓고 있는 닭발을 보고 시무룩한 표정을 했다. 

"이게 뭐야..?"

"한신포차 닭발!! 여보 한 번도 안 먹어봤어??"

"응.. 여보 많이 먹어~"

"안 먹게..?"

"응 나 사실 좀 배불러, 머리 하기 직전에 밥 먹어서.."

"직전? 몇 시?"

"5시쯤인가.. 그게 첫끼였어 너무 배고파서 참을 수가 없었어 혼자 떡볶이랑 순대랑 이것저것 좀 먹었어"

서운했다. 

많이 서운했다. 

"아니,, 말이라도 해주던가... 지금 닭발에 주먹밥에 양이 얼마나 많은데...

미리 말했으면 적게 사던가 그냥 혼자 먹을 다른 걸 샀지..

그리고 우리 부부인데.. 하루에 저녁 딱 한 끼 같이 먹는데, 그걸 혼자 먹어버려?

내 생각 안 했어? 나 7시면 집에 오잖아.. 네가 먼저 먹어버리면 나는 혼자 먹어야 되는데

나 혼자 밥 먹는 거 싫어하는 거 몰라??"

얘기하다 보니 서러움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결혼하기 전에는 다이어트한다고 혼자 저녁에 샐러드를 먹거나, 굶거나 한 적도 많다. 

언니와 시간이 맞으면 저녁을 같이 먹겠지만 가끔은 짜증 날 때도 있었다.

 "나 다이어트라고!! 저녁 안 먹는다고!! 나 치킨 시키면 안 먹을 거야 진짜 안 먹어!!"

근데 결혼하고 나는 180도 변해버렸다. 

퇴근하고 남편과 마주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혹은 넷플릭스를 같이 보며

저녁을 먹는 일이 너무 행복했다.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그래서 살이 10킬로가 넘게 쪘지만 나는 괜찮았다. 

남편과 함께라면 살 조금 찐 것 정도는 진짜 괜찮았다. 

근데 남편은 아닌 것 같았다. 


지난번에는 주문한 치킨이 막 도착해서 따끈따끈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는데

한 젓가락 하자마자 아주버님한테 전화가 왔다. 

나는 기다려 지시를 받은 강아지처럼 얌전히 식탁 앞에서 기다렸다. 

뼈 있는 치킨은 부위별로 식감도 다르고 맛도 살짝씩 달라서

둘이 같이 먹으면 하나씩 골라먹고 나눠먹는 재미가 있는데

나 혼자 홀랑 먹어버릴 수없지,, 남편이랑 같이 먹어야지

아니 사실은 그냥.. 그냥... 진짜 그냥 남편하고 같이 먹고 싶었다. 

그게 나에겐 당연했다. 

통화가 길어지자 남편이 곤란한 표정을 보이며 눈짓으로 먼저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기다렸다.

30분이 넘어가고, 다 식어버린 치킨을 보며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밥 먹고 있다고 나중에 통화하자는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워?

나 기다리는 거 안 보이나... 아주버님도 참 그래.. 결혼한 동생한테 이 시간에 전화했으면

뭐 하냐 밥 먹었냐, 재수 씨랑 밥 먹고 나중에 통화하자 말씀하실 법도 한데... 

뭐야 30분이나 나는 티브이도 못 보고,, 폰도 안 하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두 사람 통화 끊기만을 기다린 거잖아..? 아 진짜 언제 끊어.............'

전화를 끊은 남편에게 서운하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상당히 곤란해했다. 


"그니까... 내가 먼저 먹으라고 말했잖아...."

이 저녁밥 같이 먹는 문제로 지금 몇 번째 싸운 거더라

한 다섯 번 정도 되려나.. 남편은 아무리 부부여도 저녁밥을 따로 먹을 수도 있다고 말했고

나는 퇴근시간도 비슷하고 저녁에 집에 같이 있는데 그럴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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