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클리닉 상담일지
"남편분,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사랑과 케어를 전혀 받지 못한 이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하면
그러면 남편한테 어떤 걸 바랄 것 같아요? "
나는 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두 번째 상담인 오늘, 내가 제출한 문장 완성 검사를 본 선생님은
바로 나에게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물으셨다.
나는 최근 가까워진 내 과거를 모르는 친구에게
나의 옛이야기를 털어놓듯, 그냥 별거 아니었다는 느낌으로 덤덤하게 나의 어린 시절을 얘기했다.
내 얘기를 들으신 선생님은, 작은 인형들을 꺼내 역할을 주고 내가 한 얘기를 그대로
인형으로 재연해 보여주셨다.
"이 인형이 엄마고, 아빠고, 이 작은 인형이 언니분과 아내분이라고 할게요.
처음에 이렇게 넷이 모여있다가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두 분은 엄마를 따라갔다고 하셨죠?
그리고 조금 있다가 또 아빠한테로 아이들만 이동을 해서 이렇게 지내게 됐어요"
그리고 모든 인형을 치우고 아내분이라고 지칭하던 작은 소녀 인형만 남겨두었다.
"남편분,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사랑과 케어를 전혀 받지 못한 이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하면
그러면 남편한테 어떤 걸 바랄 것 같아요?"
나는 내 이야기는 슬프지 않다. 그냥 내 과거일 뿐이다.
근데 그 인형은, 작고 여린 그 인형은 너무 불쌍했다.
인형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냥,, 따듯한 가정......"
"맞아요, 그게 지금 아내분의 상황이에요.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몰랐고 누구한테 내색할 줄도 몰랐던
이 아이가 결혼을 하니 지금 아내분 앞에 나와있어요. 아내분 앞에 서서 나 많이 외로워. 나한테 사랑을 줘
얘기하고 있어요"
과거를 과거라고만 생각했고, 나는 과거는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과거를 가진 친구 중에 내가 제일 잘 컸다고,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생 때 과외는커녕 학원 한번 다닌 적 없고, 시험기간에 혼자 거실에서 작은 상을 펴고 공부할 때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간식 한번 갖다 주는 엄마도 없었지만
나는 인서울 대학진학에 성공했고, 회사도 잘 다니고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했다.
내 인생은 구렁텅이를 벗어나 따듯한 보금자리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었다.
나만의 착각이었던 걸까
사실 나는 부부클리닉 상담을 결정했을 때 나의 어릴 적 이야기가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왜냐면 난 다 극복한 거고 지금 우리의 문제는 남편이니까..
나는 참고참고 참다가 터진 거고 그 원인은 항상 남편이었다.
근데 선생님이 어린 소녀가 내 앞에 있다고 말한다.
아니라는 억울한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파노라마처럼 그동안 저녁밥으로 싸우던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같이 저녁밥 먹는 거에 집착하는 이유가,, 그런 거였어?
난 남편을 사랑해서,, 남편을 사랑하니까 같이 밥 먹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사랑해도 밥 따로 먹을 수 있는 거야..?'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두 가지의 명확함과 불안함이 떠올랐다.
이 상담은 선결제한 5회 만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명확함
이 상담이 나중에는 나만의 개인 상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