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헤브 Apr 02. 2024

4화_경력단절

1년 여의 경력단절_길고 긴 병원생활의 시작

아빠! 기쁨이는 아빠를 너무 사랑하나 봐 어떡하지?
뭘 어떡해~ 계속 사랑해 주면 되고, 네 사랑을 자주 표현해 줘서 아빠가 알게끔 하면 되지~
알았어. 그렇게 할게. 나는 아빠가 좋아 사실 엄마가 제일 좋은데
아빠도 비슷하게 많이 좋아
고맙다 아빠가 두 번째로 좋다고 해주니, 아빠는 정말 기뻐

<2024년 3월 31일 저녁 7시 25분 대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구 년 전
어느 청천벽력 같던 그날로,






한참 동안 망연자실하며 땅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윽고 굳게 닫힌 철문을 힘껏 열어젖힌 나는 곧장 병실에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아이 앞에서 울지도 못한 채 허망한 얼굴로 측은히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계속 쓰다듬는 것뿐이었다

   

멍한 얼굴, 초점은 흐려 보였고

그녀는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슬픔으로 가득 찬 가냘픈 꽃봉오리에 불과했다



가슴이 아팠다


얼마 만에 만난 아이인데

하늘은 이토록 무심하실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가혹하실 수 있나요 주님




그저 아내를 꼭 안아 주고 등을 보듬어 주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내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 소리 없이 우는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말이란 없었다


우린 그렇게 한참 가만히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울었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던 아이는 어느새 쌔근쌔근 잠이 들어있었


.

.

.


그러나, 현실이었다

이번엔 담당 주치의 교수님 호출이었다



아버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이제까지 오랫동안 이런 상황의 아이들을 봐왔지만,
이 경우에 아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많은 경우에 어머님들만 아이 치료와 재활 과정에 참여하시는데,
그러면 예후가 별로 좋지 못해요
혼자서는 아이를 제대로 살릴 수 없습니다
아버님이 적극적으로 아이 엄마와 함께해서
 치료 전 과정에 함께 하셔야 좋은 일이 있으실껍니다
.
.
.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
.
.

기쁨아 너와 함께 병원 생활을 시작했던 그때로 함께 돌아가보자

아빠 엄마가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너는 그 병원들의 추억을 갖게 되었는지,
 네 사진첩에 있는 그 추억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가장 괴로운 순간을 통과하면서 우리가 얼마만큼 단단해졌고

지금 천국을 사는 이유가 어디서 오게 되었는지
우리 함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손잡고 떠나보자






그랬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십자가 앞에서 죽어도,

기적이 일어나 다시 부활할 거라 믿을 것이냐


아니면 다른 이들 혹은 상황을 탓하며 세상을 원망할 것이냐의 기로였다


한동안 깊은 고민 속에 파묻혀

나는 무엇이라도 생각해내야 했다

 


.

.

.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깊은 기도 후에


일단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선택을 모두 정리해 보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크게 몇 가지 영역으로 나눴다


재활 플랜


1. 곧바로 입원할 병원을 찾고 모든 병원을 방문하여 예약진료를 보는 것


2. 재활 병원 특성상 1~3개월마다 입퇴원, 전원을 반복해야 하니 다음에 가야 할 병원 리스트를 선별하고 거리, 비용, 병원 대외 신뢰도 등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3. 장애인 관련 국가 행정 서비스를 찾고,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확인해 보는 것


4. 주위에 우리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찾아 정보를 얻는 것 (각종 장애인 단체, 맘카페, 지원사업)


5. 년 간 발생할 비용을 병원에 의뢰하여 미리 산정해 보고 들어가야 할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 방안을 고민하는 것


리스트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다행이었다. 이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생각했다.  


맨 먼저,


일단 그해 이직한 회사에 이 상황을 논의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입사했으니 육아 휴직을 받으면 재정적인 부담은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인생이란 역시 내 바람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마치 원래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이직한 지 1년이 되지 않았고, 비슷한 선례조차 없었기 때문에 원하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내막은 자세히 모르지만 외국계 회사 특성상 본사와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할지를 타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No라는 답이 나왔다. 결국 내가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결단해야 하는 시간이 왔고, 안전한 길이 아닌 모험을 하기로 선택했다


큰 용기가 필요한 때였다


주님을 믿지 않았다면 나는 회사를 선택했을 테고

비용을 대는 것 말고 그 나머지 시간의 고통은 오롯이 아내가 져야 했을 것이다 

나는 서서히 나 몰라라 했을지도 모른다

1년 병원생활을 직접 하고 나서야 비로소 경험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치의 선생님 주신 말씀을 이제 내가 직접 실행에 옮겨야 할 때가 왔다

매달 들어가는 200-300만 원의 병원 보다 더 커 보였던 것은 아내의 아픔이었다 밤마다 이어지는 소리 없는 울음소리를 기억한 덕분이었다 


정신이 혼미한 아내에게 이 모든 짐을 주고 회사로 떠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에 남아 어마어마한 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여전히 숭고한 일이었지만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여겨졌다


불가항력적인 상황 속에서 빠른 결정을 해야만 했고, 


이후 내린 그 결정에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감했던 나를 그 사건 이후 신뢰하게 되었다


이 모든 상황 가운데 내가 키를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만큼 명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 병원 관련 모든 일을 최대한 빨리 깨우치는 것, 최대한 아내와 아이를 편안하게 하는 것


이후에 회사는 다시 가면 되는 문제였다


병원비는 지금까지 모은 돈을 쓰면 되는 것이었고, 조금이었지만 보험도 일부 혜택을 받을 거라 예상했다.




살아계신 하나님, 당신이 살아 계신 줄 믿습니다. 나의 이 결정 가운데 함께 해 주세요


내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며, 이 선택이 평생에 가장 잘 한 결정이 되게 해 주세요


아이를 살리는 것만큼, 지금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제 아내의 눈물을 닦아 주세요


어서 정신을 차리고 기쁨 이가 건강해질 수 있도록 저희 부부가 병원생활을 잘 해내게 해 주세요


반복되는 기도와 함께

이 모든 결정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바로 그날부터, 나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병원을 찾아 헤맸다.

전화하는 병원마다 이미 병실은 다 찼고, 그 병원의 재활의학과 선생님과 진료를 보는 게 순서라는 판에 박은 대답만을 들을 수 있었다.


나만 급했다. 수화기 너머의 그들은 천하태평한 목소리로,

녹음기에 나올 법한 모노톤으로 같은 말만 반복하 것 같았다 그저 가슴이 미어졌고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력했다  


계속되는 시도 끝에

서울, 경기권에 있는 여러 소아 재활 병원 중 단 한 곳에서만 바로 오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경기 모 병원 1인실에 입원을 했다. 당시 1인실 하루 입원 병원비는 15만 원을 웃돌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돈은 언제나 나중 문제였다. 아이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인데 후회는 있을 수 없었다




새로운 병원으로 입원 후, 끔찍한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5년 차, 모아놓은 돈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 소아 재활 병원이 그렇지만 30분 혹은 40분 치료에 3만 원~6만 원 정도가 들었고 치료 횟수에도 제한이 있었다. 소아 재활 병원 자체가 너무 부족해, 많은 아이들이 집에서 다음 병원에서 불러 줄 전화만 기다리는 실정이었고, 대기를 몇 달씩 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국가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알아보니, 지정 희귀 질환에 국한되어 지원된다 했다. 내 아이는 중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부모의 급여 정도, 재산 정도에 따라 1회성 지원 사업에 지원을 할 수 있다 하는데, 그것마저 비슷한 어려움 속에 있는 수많은 가정을 제쳐야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1인실 입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모 국립병원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 서울로 진입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다행이었지만, 누군가는 대기로 오랜 시간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밤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그렇게 지금도 겪는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애엄마가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 병원으로 출근했다. 보호자 1명 원칙에 따라 오후 치료가 끝나고 저녁에 아이를 씻기고, 아이가 잠들면 밤늦게 다시 집으로 돌아와 취업 준비를 했다. 다행인 것은 처음 1년 입원 생활 동안 아내, 아들 곁을 지키며 함께 많은 일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우리는 힘든 하루하루를 서로를 보며 의지했고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재활 플랜 및 액션


1. 곧바로 입원할 병원을 찾았고 가능한 모든 재활 병원에 예약을 걸어 순차적으로 진료를 보았다  


2. 대부분 1개월~3개월 전원을 해야 하는 내규에 맞춰 다음에 가야 할 병원 리스트를 선별하여 지속적으로 병원을 바꿔가며 새로운 병원, 체계, 환경, 함께 입원하는 사람들에 적응해 갔다


3. 장애인 관련 국가 행정 서비스와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찾아보았고 가능한 지원이 무엇인지 공부하였다


4. 주위에 우리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발품을 팔면서 많은 사실을 새롭게 배웠다   


5. 년간 발생할 비용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그 모든 상황에 최선을 다해 대처해 나갔다  


1년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는 보이지 않는 그 절대자 하나님께 매달렸다

밤낮으로 이어지는 병원 생활 이후 저녁엔 재 취업 준비를 하고, 밤에는 무릎을 꿇거나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병원에서 자고 있는 아내, 아들을 떠올리며 울다 잠이 들었다


언제까지인지도 모르는 그 긴 싸움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었고 그렇게 우리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현실을 알리기 위해 길게 서술하였습니다 아픈 이들의 현실에 깊게 관심 가져주세요)

이전 03화 3화_소아병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