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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Mar 28. 2024

2화_꽃

너는 꽃이라고 네가 그랬지, 맞아 넌 환히 꽃 피운 후 곧 열매 맺을 거

아빠 난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
잘 때는 엄마가 필요하고
놀 때는 아빠가 필요해
가끔 무서운 아빠인데, 그럴 때 빼고는 아빠가 제일 좋아

아빠 나랑 놀아줘. 나 지금 심심해

아빠 도망 못 가게 묶어 놓을 거야. 줄넘기 줄로 꽁꽁 묶어 놓을 거야

 




지난 10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단 한 번도 지금처럼 살 거란 상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정반대 세상을 꿈꿨었다   


아주 세세하게, 아주 구체적으로..  


15살 그때의 나는 우울한 아이였다. 남중에 들어가고 처음 왕따라는 걸 당해봤다.


고작 4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짧은 시간이었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짙은 그림자는 영겁의 시간 동안 내 마음을 마구 오래 짓밟았다.


그 환영은 사라지지 않았고 밤만 되면 나를 괴롭혔다  


괴롭힘을 당하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왜 괴롭히지? 아무 이유 없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고 해석도 불가능했다


그 덕에 나는 첫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다.


6학년 시절, 말 수 없는 평범한 조용한 아이였던 내게


반아이들과 학교 선생님들은 전교 착한 어린이 상을 수여해 주었다.


그저 친구들 말에 말없이 듣는 대로 따라주는 수줍은 여린 아이였을 뿐인데..


그렇게 환대라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교실 앞으로 걸어 나가, 전교 착한 어린이 상을 받았던 그 흐릿한 기억은 지금도 내 마음에 햇살처럼 따스하게 남아있다


뿌연 기억이지만, 그때 연필 지우개 필통 세트를 받고 혼자 좋아했던 것 같다. 나름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내 주장을 펼지 몰랐던 나는 아예 주체적인 생각이란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친구들이 말하면 웃고, 말한 그대로 따라가는 순종적인 평범한 남자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러던 내게 입이 거친 남학생들만 가득한 중학교 생활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썩은 동아줄 하나 없이 서 있어야 하는 위험한 시험대 자체였다.


실패 후 낭떠러지로 떨어질 게 뻔히 예상되는, 아슬아슬한 하늘 아래 외로운 외나무다리였다.


이제 떨어질 일만 남았다


그렇게 1학년 시절을 가까스로 넘기며,


나는 인생에 깊게 드리워진 무겁고 무서운 그림자를 처음으로 밟아 버렸다.


그 그림자의 위세는 계속 커져만 갔다. 첫 번째 트라우마였다. 부모님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공포의 시절이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어느 날, 나는 신을 만났다.


교회 예배당에서 몇 시간씩 무릎 꿇고 기도하던 어느 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과 함께 내게 신이 찾아왔다. 내 마음속을 한 번에 채워 버린 섬광처럼 밝고 기이한 경험과 마주 했다. 처음으로 마음에 깊은 평화가 일어났다


그 느낌이 좋아서 학교가 끝나면 늘 교회로 향했다. 그리곤 보이지 않는, 믿어지지 않는 신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소리도 질러가며 울고 불고 기도라는 걸 내 마음대로 해댔었다.


...


어느 날, 기도하다 녹색 물을 토했다


드디어 죽는 거구나


마르고 허약했던 나는 그런 생각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빨간색 피가 아닌 녹색물이 쏟아졌다.


내 몸에서 어째서 이런 녹색 물이 나올 수 있지?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원인 미상인 채로 남은 채 그 시절은 홀연 떠나가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즙에서 나오는 물이라 했다.

어디가 크게 아팠던 게 분명했던 것 같은데 그 원인도 모른 채 그렇게 내 10대는 끝이 났다.



기쁨아 아빠가 처음 들려주는 이야기지?


어쩌면 아빠 이야기가 네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학교 가서 느끼는 외로움, 친구를 사귀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콕콕 찌르고,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짜증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 것 같아 찾아오는 마음속 깊은 상실감, 너를 향한 무관심..


어른들의 끊임없는 "이렇게 해"


아빠도 어렸을 땐 그게 뭔지 정확히 몰랐었어


왜냐하면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으니까. 아빠 혼자 감내하면서 스무 살이 넘어서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거든


그게 무엇이었는지, 왜 그렇게 나는 아팠었는지..


그래서 너의 고통이, 너의 아픔이, 너의 슬픔이 뭔지 알아. 다는 모르겠지만 그 무게감이 어떤지 조금은 이해해


그래서 너의 아픔에 연동이 빠르게 되나 봐.


금요일 저녁, 학교 끝나고, 다시 병원 다녀오고 나고 저녁에 코피 쏟을 때..


네 감정에 아빠 감정이 협착돼서 너무 아팠어. 네 고통이 그대로 전달돼서 잠이 안 오더라


그렇게 아빤 깊은 불면을 겪고 있고, 잠이 안 드는 시간에는 여지없이 기도를 드려.


한 번도 본 적 없고, 어쩌면 사람들 말처럼 없을 수도 있는 그 하늘의 하나님께 말이야


그런데 아빤 경험으로 이젠 알아. 그 하나님이 아빠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걸

아빠 삶에 놀라운 일들이 30년 가까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

아빠가 인지하기 시작한 15살부터..


아빠를 너무 사랑해 주는 우리 기쁨이, 아빠가 회사 일로 늘 바빠서 시간 못 내줄 때마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네 이쁜 마음에 감사해.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면 아빠 발목을 거의 매일 묶어줄까


난 너의 사랑의 포로야


도망갈 생각 없어. 그러니 불안해하지 마


나는 너에게 예속되었고, 너는 나에게 연결되어 있어


우리는 운명 공동체야. 사랑해 너를 너무 사랑해 아빠가 할 말이 아주 많아.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아빠는 떠나고 없을 거잖아.


그때 네가 혼자 힘들 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를 위해, 아빠가 10년을 그대로 저장해 두었어.


아빠 사진 첩에는 네가 볼 1만 오천장의 사진이 있고, 네가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3천 개의 편지가 있어


네가 가장 힘들 때, 그때 그것들이 너를 일으켜 세워줄 거야.


너는 꽃이야. 활짝 핀 꽃, 지는 것 같지만 곧 열매로 변해. 많은 사람들을 부요케 할 거야


일전에 네 입으로 직접 네가 말했듯이,


너는 피어나는 꽃이야. 영원히 지지 않을 꽃, 그러니 기운 내 너는 뭐든 할 수 있어!

우리 매일 목소리 높여 선포하는 말 있잖아


"나는 할 수 있다"


사. 랑. 해 마음이 부서지게 너를 사랑해 기쁨아

느려도 괜찮고, 모자라도 괜찮고, 못해도 괜찮아

시간이 필요한 거야. 아빠처럼 너도 가장 멋진 삶을 살게 될 거야



아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거든. 정말 그래.



살고 싶은 대로 사랑하며 살았어. 그래서 마음만큼은 아빠가 가장 부자야


아빠가 살아온 삶 그대로 보여줄 테니, 우리 같이 천천히 그 길 걸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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