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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Mar 30. 2024

3화_소아병동

살며 사랑하며 다른 이웃을 보듬어야 하는 이유

아버님, 어머님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네... 선생님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이 아이는 앞으로 걷지 못할 확률이 상당히 높고,
 
어쩌면 기대와 달리 앞을 보지 못할 수 있어요

그리고 오랜 두통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기타 장애가 아이를 더 괴롭힐 수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성장이 끝나는 20년 간은 재활병원 생활을 해야 할 겁니다

성장이 멈출 때까지

그렇지만, 너무 겁먹지 마세요







예상하지 못했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봤던 그 장면이 순간 오버랩 될 뿐이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필름이 끊긴 채 고막을 파열해 버리는 굉음 소리만이 그 공간을 가득 메웠다


열심히 설명하는 선생님이 연신 모니터를 가리키며 나의 이목을 집중시키려 했으나,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아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아무도 없는 소아 병동 복도로 뛰쳐나갔다


병원이 무너져라 나는 발악하는 소리를 마구 질러댔다


모두가 들었을 것이다


처절한 아비의 주체하지 못하는 발악소리를..


한참을 울다 그 순간 생각 나는 아는 목사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어. 하나님은 어쩌면 이렇게 가혹할 수 있어?


그 하나님이 나에게 또 다른 어려움을 주셨어. 내 아이의 어려움은 내 어려움인데


이제 나는,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전화를 끊곤 한참을 꺼이꺼이 울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병원 복도 구석,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닥에 쭈그려 앉아

그곳이 흥건해질 때까지 하염없이 울었다

.

.

.


그러다 번뜩 아내 생각이 났다


그녀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내가 병실을 비우고 갑자기 떠났으니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그 순간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을까..


얼른 그녀에게 달려가야 했다







그를 우리 품에 안기까지 녹록지 않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4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 4년 동안 아이를 어떻게든 가지려는 가혹한 노력들이 필요했고,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그 아릿한 기억을 다시 복기할 수밖에 없었다


좋다고 하는 한약을 찾아 먹고, 사방팔방 흩어진 병원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렇게 4년간 반복되는 실패는 끊김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반쯤 포기하던,


어느 날

 

소중한 생명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초음파 상에 점과 같은 아이를 만나곤 우리는 환호했다.

그렇게 아내는 정성으로 아이 만날 날만을 기다렸다


남들이 모두 하는 태교였지만, 우리에겐 특별했다.

그렇게 우리 두 품에 아이 맞이 할 채비를 서둘렀다


더 이상, 인생에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태어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 보였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다 정상이라고 했었어'

모든 검사 상에 최종적으로 이상이 없었고

잘 태어났는데.. 아무 일 아닐 거야

걱정하면 오히려 문제가 커지니까 우리 편한 마음으로 선생님 만나보자


처음으로 가보는 대학병원 소아 병동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아픈 줄 몰랐다


예전에도 TV를 통해 아픈 아이들을 본 기억이 있지만, 눈앞에 서 있는 아이들은 정말 너무나 많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 관심이 부재한 만큼 세상은 그만큼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내가 단지 모를 뿐이었다



머리를 빡빡 깎고 엄마 손 잡고 지나가는 링거 아이들..

한 둘이 아니었다




기쁨아 안녕~ 아빠야

처음으로 말해주네. 네가 어떻게 이 모든 걸 시작하게 되었는지

왜 네가 10년이란 시간을 오롯이 병원과 함께 해올 수밖에 없었는지


어쩌면 이 글이 보기 싫을 수 있을 거야

너무 아픈 시절들이니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니까

말 못 하는 아기였지만, 너도 모두 지켜봤으니까

아픈 형들, 누나들을 보며 너도 이미 눈치챘을 테니까

네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문장으로 말을 하게 되었을 때

네 입에선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지


저 형아 죽어? 저 형아 많이 아픈 것 같아. 그럼 나도 곧 죽는 거야.. 아빠?
아빠 무서워

그런데도 너는 늘 아픈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어


두세 달 꼴로 향하는 소아 병동을 들릴 때면 언제나 너는 채혈실 바깥을 기웃거렸지

그리곤 아무도 모르게 채혈실에 들어가곤 했었어  


그때 알았어


네 마음에 다른 사람 아픔을 보고 느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형, 누나, 동생이 아픈 걸 보면 마치 네가 아픈 것처럼 같이 그 고통 느낀다는 걸

그래서 늘 너는 수술하는 의사 선생님이 될 거야 반복해서 말한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

너는 알고 있었어

 

네가 원하면

기쁨이 넌 수술하는 의사 선생님이 될 수 있어


사람들은 말하지

의사 선생님은 똑똑해야 될 수 있다고

아니,

진짜 의사 선생님은 사랑할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야


네가 아팠던 만큼

네가 처절히 고통스러웠던 만큼

너는 훌륭한 의사 선생님으로

상처받고, 고통받는 아픈 사람들 편에 언제나 서 있을 거야


기쁨아 사랑해 정말 너를 사랑해

아빠와 엄마는 너를 놓고, 너의 꿈을 두고

날마다 간절히 두 손을 포개어 하늘에 기도를 올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 성경 시편 23장에 이런 구절이 있거든, 네가 힘들 때 언제든 기억하고 되뇌길 바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사. 랑. 해 죽음을 이기는 강한 사랑으로 아빠 끝날까지 너를 지켜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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