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 유치원과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을 겸하는 곳을 두세 달 정도 다녔다.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된 나는, 학원 같을 곳을 다닐 형편이 아니었지만
다른 애들처럼 학원이라는 곳을 가고 싶다고 울고 불고 한 거 같고
할머니는 엄마인지 아빠인지 누군가 모아 온 빨간 돼지저금통 배를 갈라서 두세 달 정도의 학원비를 확보했다.
어느 날 학원에 갔는데 선생님들이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인사를 해도 본체만체했다.
뭔가 싶어 보니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를 둘러싸고 너무 예쁘다며 꺅꺅거리고 있었다.
크고 동그란 눈에 하얀 피부, 까만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남색 원피스에 하얀 타이즈를 신은 여자 아이였다.
딱 봐도 부모님이 금이야 옥이야 사랑으로 키운 거 같고
별로 이쁜 거 같지도 않은데 선생님들은 난리라고 생각했다.
질투가 났다.
나의 보호자들은 참으로 정직한 사람들이었는지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예쁘지 않다는 것을 잘 인식시켜 주었다.
나는 예쁘지 않기 때문에 저렇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감탄을 받을 일도,
금이야 옥이야 사랑으로 키워 줄 부모도 없다는 생각까지 했을지도 모르겠다.
예쁘지는 않아도 착하다고 인식되고 싶었던지 나는 솔선수범하여 그 아이와 놀아주는 시늉을 했다.
그 아이도 내 손을 잡고 잘 따랐다녔다.
한참을 같이 놀다가 유치원에 있는 작은 시소를 탔다.
내가 발을 세게 굴려 아이를 높이 올려줄수록 아이의 웃음소리는 커졌다.
아까 잠시 질투했지만 나로 인해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에 신이 나 더욱 세게 발을 굴렸다.
그러다 너무 높이 올렸는지 아이는 그만 의자에서 미끄러져 놀이 기구 아래에 다리가 끼고 말았다.
아이가 와앙-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나는 도망쳐 버렸다.
곧이어 선생님들이 우르르 몰려와 아이를 달래주었다.
하얀 타이즈를 신은 작은 발목에 피가 났던가.
선생님이 혼자 놀다가 다쳤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그냥 울 뿐이었다.
멀리서 숨어보던 나는 아이가 나랑 놀다 그랬다고 할까 봐 너무 무서웠다.
조금 뒤 아이는 엄청나게 키가 큰, 양복 입은 아저씨에게 안겨 집으로 돌아갔다.
미안하기는 한데 그 애가 나보다 한참은 더 나아 보여서 그리 미안하지 않았다.
그 애는 예쁘니까. 그냥 있어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렇게 금방 데리러 올 사람이 있으니까.
아직도 그때의 장면이 생생하다.
그런데 환장하겠는 것은 몇십 년이 지나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때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예쁘지 않다는 것, 사랑받지 못한다는 기분, 누군가처럼 무언가 풍족하지 못하다는 감정이 늘 뒤통수 어딘가 붙어 있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울컥 터지고 만다.
뭔가 억울하고 불공평한 감정이다. 내가 딱히 잘못한 건 없는데 늘 나만 손해인 기분이다.
작고 예쁜 것들에 질투가 난다.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것들에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