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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와 아름다움 사이

해방촌 가가사

by 아공간

쓸모와 아름다움 사이, 가가사



Episode.4

Text | Chanho Hwang

Photos | Chanho Hwang



해방촌 신흥시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4평 남짓의 아담한 빈티지숍. 공간 곳곳에는 김시현 대표의 취향이 고스란히 스며들어있다. 일과 삶의 경계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곳은 그녀에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취미가 어느새 일이 되어버린 지금, 그녀가 만들어가고 있는 가가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본인과 공간을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본업으로 VMD 일을 하면서 해방촌에서 ‘가가사’라는 빈티지 소품 샵을 운영하고 있는 김시현입니다. 가가사는 제 인생 첫 가게이자, 크진 않지만 알차게 채워진 소품들로 구성된 제 취향이 오롯이 담긴 공간이에요.



공간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사실 시작은 굉장히 단순하고 충동적이었어요. VMD라는 일이 공간을 연출하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지인이 운영하던 빈티지 샵에 놀러 갔다가, 나도 이런 가게를 하고 싶다는 확신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그 길로 바로 매물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그렇게 가가사를 열게 됐어요.





본업과 병행하며 3년 가까이 공간을 꾸준히 운영하고 계신데,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만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지속하게 되더라고요.

자영업을 하며 가장 크게 느낀 건, 시작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만두는 것 역시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저는 아직 그만둘 용기가 나지 않아서, 조금 더 이어가 보자는 마음으로 이끌고 있어요.



그만둘 용기! 시현님에게 ‘그만둘 용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작년에 한 번 크게 번아웃이 왔어요. ‘이제는 접는 게 나을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죠. 물론 본업이 있기 때문에 당장의 생계에 큰 영향을 주진 않지만, 감정적·금전적으로도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어요.

이 가게를 제가 정말 애정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지속함과 끝맺음 사이에서 갈팡질팡 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하고 싶었던 것을 접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걸 느꼈고, 가게의 상품 셀렉을 더 고민하고 변화를 주는 방향으로 지속하게 되었죠. 이 시기를 겪고 나니 끝맺음을 선택하는 다른 자영업자 분들이 큰 용기를 낸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쉴 틈이 거의 없을 텐데, 그게 번아웃의 원인이 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네, 사실상 쉬는 날이 거의 없어요. 가게 문을 닫는 날엔 본업이 있고, 비어 있는 시간에는 가게를 열다 보니 휴식이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그나마 절충안으로 금·토·일만 오픈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고요. 요즘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평일 오픈도 조금씩 시도해보고 있어요. 지금은 그냥 잠자는 시간이 제 유일한 휴식 시간인 셈이에요.



꽤 워커홀릭처럼 들리는데요. 그만큼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이 큰 거 같아요.

원래는 이런 삶을 살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어떻게든 해내게 되더라고요. 정말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 느낌이에요. (웃음)





가가사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제품을 셀렉하나요?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기준이에요. 보시다시피 공간 자체가 워낙 아담하기 때문에 더더욱 차별화가 필요하거든요.

빈티지 소품은 물론이고, 직접 제작한 제품이나 작가들과의 협업으로 구성된 상품들도 있어요. 가가사만의 색깔이 분명히 드러나는 구성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결국 시현님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겠네요.

거의 100% 제 취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제 취향에 공감해 주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즐겁게 셀렉하고 있어요. 이제는 해방촌에 들르시는 분들이 필수 코스 같이 와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친구를 데려와서 소개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언제나 취향이 통하는 분들과의 만남이 참 소중하고, 이 공간을 지속하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어요.






기억에 남는 순간도 있었을까요?

따뜻했던 기억이 하나 있어요. 어떤 모녀가 외할머니께 드릴 책갈피를 고르러 오셨는데, 포장하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 외할머니께서 연세가 있으심에도 책을 정말 즐겨 읽으신다고 하더라고요. 손주들이 책갈피를 선물하고, 또 책을 선물하니 할머니도 기쁜 마음에 더 많이 읽으시고… 정말 좋은 순환이 일어나고 있었죠.

그 얘기를 들으며 돌아가신 제 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했고,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의미가 되어줄 수 있다는 걸 느끼면서 뭉클했어요. 이런 순간들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인 것 같아요.



직접 제품을 제작하기도 하고, 작가의 작품도 셀렉한다고 하셨는데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저는 비즈를 활용한 액세서리류, 책갈피, 키링 등을 직접 제작하고 있어요. 어머니께서 뜨개 공방을 운영하셔서 한때는 가게에서 뜨개 제품도 함께 판매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뜨개 제품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이 뭘까를 고민하게 됐고, 그 연장선에서 비즈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작가분들의 작품은 금속, 목공, 도자기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시는 분들 중에서 제 취향에 맞는 분들을 한 분 한 분 직접 컨택해서 셀렉하고 있어요. 손의 감각이 살아있는, 손맛 나는 제품들을 주로 가져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간 전체를 둘러보면 시현 님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또렷하게 느껴져요.

‘가가사’라는 이름부터 방향성을 담고 있어요. 집을 의미하는 단어 ‘CASA’에서 출발했고, 일상 속 쓸모와 아름다움을 사유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정했어요.

단순히 보기에만 예쁜 물건은 쉽게 잊히는 반면, 쓸모만 있는 물건은 감정적인 만족감을 주지 못하더라고요. 저는 쓸모와 아름다움이 함께하는 제품을 좋아해요.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따뜻하고 편안한 감정을 닮은 물건들을 셀렉하다 보니, 세월을 품은 빈티지 제품이나 손의 온기가 느껴지는 수공예 제품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갔어요. 그런 마음을 담아 공간을 채웠고 방문하시는 분들도 그런 따스함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제품들이 손님들의 집으로 가서도 삶 속의 기분 좋은 순간을 만들어내길 바라요.



공간 자체의 무드에서도 따스함이 느껴져요

이곳을 구상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색감이었어요. 여기가 원래 완전 새하얀 공간이었는데, 제가 아이보리로 칠하고 조명이나 선반, 집기 같은 것도 웜톤으로 구성했죠. 공간이 작다 보니 볼거리가 많아야 오시는 분들이 좀 더 즐길 수 있을 거 같아서 자투리 공간까지 디테일을 주려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셀프로 인테리어를 하다 보니 조금 힘이 들기는 했죠. 그만큼 애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고요.





작은 공간에 물건이 많은데도 어수선한 느낌이 아니네요. 본업이 영향을 준 걸까요?

VMD를 10년 넘게 해오다 보니 공간에 대한 감각이나 구성은 아무래도 본업에서 온 영향이 커요. 일하면서 전체적인 공간 연출을 많이 다뤄왔기 때문에, 가가사의 디스플레이도 훨씬 수월하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 자신감 있게 일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일과 개인적인 삶에서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고 계신가요?

예전엔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라이프’라는 영역이 가가사로 채워진 느낌이에요. 퇴근하면 핸드메이드를 만들고, 쉬는 날엔 빈티지 제품을 디깅 하거나 촬영해요.

그런 생활이 익숙해지다 보니 난생처음으로 주변에서 워커홀릭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취미 자체가 일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요?





취미가 일이 돼버리면 싫어진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가게 일도 그렇고, 핸드메이드를 시작한 것도 작년 이맘때쯤부터였는데, 단순히 취미를 넘어 판매까지 이어지게 제작을 하다 보니 긴장도 많이 되고 부담감도 커지더라고요.아무래도 돈이 오가게 되니까요. 그래서 쉬지 않고 계속한 것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바쁜 시기가 지나고 압박감을 느꼈던 시기가 지나고 나니 지금은 오히려 여유가 생기고 정말 취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일상에 잘 녹아든 느낌이랄까요? 일로서 하는 게 아니라 퇴근하고 오늘은 집에서 이거나 해볼까, 이런 거나 만들어 볼까 하면서 자연스럽게 됐어요.





시현 님에게 가가사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 공간이 저를 많이 바꿔놨어요. 나라는 사람을 더욱더 확립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죠.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김시현이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 거예요. 그래서 이 공간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일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어요.



확실히 공간은 사람을 보여주는 거 같아요

정말 동감합니다. 결국 공간은 그 사람의 취향을 담고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비싼 것들로 채우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저처럼 손의 감각과 취향이 깃든 물건들을 놓고 싶어 하잖아요. 각자의 성향이 드러나는 거죠. 그게 재밌는 부분이고요.

처음엔 제 색이 이 정도로 드러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공간이 저를 닮아가더라고요. 그런 변화가 참 신기하고 뿌듯하게 느껴져요.





이곳에서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자체 제작 제품의 비중을 더 늘려보고 싶어요. 지금은 비즈 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앞으로는 금속이나 향 제품도 직접 제작해서 선보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가사를 ‘작은 실험실’ 같은 공간으로 삼아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보고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이 되는지를 지켜보고 싶어요. 공간을 확장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그냥 이 정도 크기가 저한테는 딱 좋은 무대 같아요. 제 욕심을 펼치기에 딱 알맞은 크기의 무대요.








**아래 사이트에서 인터뷰에 수록되지 않은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hwangchanho.com/gag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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