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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중심이 되는 오아시스

디켄트 그레이웨일

by 아공간

사람이 중심이 되는 오아시스, 디켄트 그레이웨일



Episode.7

Text | Chanho Hwang

Photos | Chanho Hwang



켄트 앤 제이먼의 대표 김동욱은 그의 크루원 중 한 명의 닉네임을 빌려 도심 속 오아시스를 탄생시켰다. 첫 시작인 디켄트 백현점과는 다른 접근으로 다가간 디켄트 그레이웨일. 고래의 여정을 담은 이곳에서 사람 중심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그에게 공간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사업 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김동욱 대표



디켄트 백현점과 그레이웨일점은 온도가 좀 극명한 것같아요. 두 매장의 차이가 있다면요?

백현점은 미니멀한 감성을 바탕으로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세팅한 공간이에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성해 놓기보다는, 시간에 따라 차곡차곡 레이어를 쌓아가듯 만들었죠. 메뉴 역시 여유를 두고 천천히 개발해 나갔어요. 처음엔 상권 자체가 거의 죽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일대가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어요. 반면, 그레이웨일점은 시작부터 확실한 콘셉트를 가지고 철저하게 기획된 공간이에요. 대리석, 테이블 문양, 출입문, 기둥, 가구 등 모든 요소에 디테일을 더해 임팩트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구성했죠.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남기고자 했던 곳이에요.



백현점에 이어서 이곳 삼성동에 두 번째 매장을 열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올해 저희가 중점적으로 고민했던 안건 중 하나가 바로 매장 확장이었어요. 더 나아가 올해 혹은 내년 중에는 해외 진출까지 염두에 두고 준비 중입니다. 내부에서는 회의도 자주 하며 방향을 끊임없이 논의하고 있어요. 이 사업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확장이 필수라고 판단했죠. 그렇지 않으면 내부에서 아무리 잘해도 결국 우리끼리의 리그에서 끝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2024년 5월에 공식적으로 매장 확장을 선언했고, 이후 이 공간의 건축주를 만나 빠르게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인테리어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저희 내부에도 공간 디자이너가 있지만, 이번만큼은 내부 인력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켄트 앤 제이먼 팀은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멤버들이라 자연스레 우리 다움이 묻어나는데, 그 감도에서 한 발 벗어나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후배 디자이너 중 뛰어난 실력을 가진 조원석 디자이너에게 이번 디자인을 맡겼어요. 그리고 단순히 콘셉트를 시각화하는 것뿐 아니라, 시공까지도 누가 책임지느냐도 중요했어요. 아무리 예쁜 디자인이라도 마감의 디테일이 떨어지면 완성도가 현저히 낮아지니까요. 그런 점에서 시공도 신뢰할 수 있는 후배에게 맡기게 되었고, 두 분 모두 디테일에 있어선 병적이라고 할 만큼 섬세한 사람들이라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즐거웠어요. 또한 다른 곳에 필요한 리소스도 많이 줄일 수 있었죠.





인스타에서 봤던 오픈식 사진이 인상 깊었어요. 일반적인 오픈식과는 다르더라고요.

건물주 측과는 별도로, 저희만의 오픈식을 따로 진행했어요. 중심은 바리스타였죠. 각자 지인을 초대해 직접 커피를 내리고, 공간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공간을 실제로 운영하게 될 주체는 바리스타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시간으로 이 공간의 시작을 알리고 싶었어요.





오픈식을 보면서 ‘이런 회사라면 나도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저희는 직원이라는 단어 대신 크루라는 표현을 사용해요. 함께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브랜드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회사가 잘될 때 그들도 함께 잘 되는 구조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내부적으로도 인센티브를 공유하고 있어요. 사실 예전엔 저 혼자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점점 깨달았죠. 제가 잘할 수 있는 건 결국 저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기 때문이라는 걸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대표님 말씀을 들으니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나이를 먹고, 돈도 잃어보고 하면서 하나씩 깨닫게 된 거죠.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은 많을 거예요. 다만 실행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아요. 특히 돈이 얽힌 문제에서는 나누는 게 손해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에겐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에요. 좋은 원두, 좋은 인테리어는 자본으로 마련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 정체성, 브랜드의 분위기는 돈만으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곳의 이름을 그레이웨일로 정한 것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출발하게 된 거예요.





이곳의 이름에 대해서 좀 더 말씀해 주세요.

저희는 늘 사람을 브랜딩 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두 번째 매장에는 디켄트의 크루 강병주 팀장의 닉네임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죠. 그의 바리스타 활동명이 바로 ‘그레이웨일’이에요. 세 번째 매장은 다른 크루의 닉네임을 빌려 그에 맞는 테마로 풀어갈 계획이에요. 이런 식으로 디켄트는 일종의 플랫폼처럼 확장되어 가는 거죠.



프랜차이즈의 개념이라기보다는 독립성이 짙은 개별 브랜드의 느낌이네요.

맞아요. 우리가 지향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프랜차이즈와는 조금 달라요. 미국 브랜드 딘 앤 델루카를 모티브로 삼은 부분도 있어요. 그 브랜드는 지역마다 인테리어나 구성 요소가 전부 달라요. 어떤 곳은 카페만 운영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레스토랑이나 식자재 판매가 함께 이뤄지기도 하죠. 심지어 가격도 지역마다 조금씩 달라요. 저희도 그런 방식처럼, 각 매장이 독립적인 브랜드처럼 느껴졌으면 해요. 디켄트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있지만, 공간이 담고 있는 이야기나 콘셉트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전개해 나가는 거처럼요.





이곳의 콘셉트도 그레이웨일이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나요?

네. 커피의 히스토리를 살펴보면 원두, 항해, 무역 같은 키워드들이 자주 등장하거든요. 스타벅스라는 이름도 실제 항해사에서 따온 것처럼요. 그래서 커피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지역 간 이동이나 무역의 흐름 같은 이야기를 연상하게 됐고, 그런 맥락에서 고래와의 연결이 떠올랐어요. 고래가 먼 여정을 떠나는 이미지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게다가 이 건물 자체의 형태가 약간 피라미드처럼 보여서 그 느낌을 살려 사막을 지나 바다로 향하는 여정, 즉 오아시스를 향한 흐름으로 콘셉트를 잡게 됐어요. 공간 구성에는 모로코의 건축 양식을 차용했고, 전반적으로 고래가 항해하는 이야기처럼 연출하고 싶었어요.



공간 구성과 콘셉트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기뻐요. 저희가 고래의 여정을 그려낸 공간이니만큼 내부에도 분명한 시퀀스를 부여했어요. 입구에 들어서면 어둡고 좁은 복도를 지나게 되는데, 그 끝에는 마치 오아시스를 연상케 하는 밝은 색감의 공간이 펼쳐져요. 뱃머리 모양을 본뜬 바리스타 공간 역시 그런 여정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 되죠. 사실 복도 없이 테이블 수를 더 늘릴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걸 과감히 포기하고서라도 이 경험의 흐름을 살리고 싶었죠. 여담이지만, 바리스타 공간에 사용된 대리석을 찾는 것도 꽤 고된 작업이었어요. 바닷빛이 감도는 적절한 재질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이 고생했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콘셉트를 가진 공간이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요?

전체적인 콘셉트는 유지하되, 디테일한 부분은 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공간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바리스타들이니까요. 그들의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공간도 함께 변해가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비 오는 날엔 조명의 톤이 달라질 수도 있고, 음악이 바뀌거나 동선과 메뉴 구성이 유동적으로 바뀔 수도 있죠. 모든 걸 매뉴얼화해서 딱딱하게 운영하는 방식은 저희가 추구하는 브랜딩이 아니에요. 큰 틀은 갖추되, 세부적인 요소는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감각으로 채워지는 것, 그게 더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브랜드의 모습이라고 믿고 있어요. 100년 넘게 이어져 온 명품 브랜드들 중 많은 경우가 사람의 이름을 따르고 있잖아요. 결국 브랜드를 이끄는 건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 공간을 어떻게 쓰는지, 그 사람들과의 내부 브랜딩을 어떻게 구축해 나가는지가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죠.





디켄트 카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켄트 앤 제이먼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국내외 브랜드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어요. 브랜딩 기획이나 컨설팅을 하면서도 늘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클라이언트의 입장에 따라 방향이 바뀌거나, 예산 문제로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 한계가 누적되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 브랜드를 직접 한번 만들어보자는 결심이 섰어요.

당시 저희 사무실이 있던 백현동은 유동 인구도 적고 굉장히 조용한 동네였어요. 그곳은 제가 건강이 안 좋았던 시절 큰 위로를 받았던 공간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애정이 많이 가던 장소였죠. 그래서 익숙한 곳에서 천천히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디켄트를 오픈하게 됐어요.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말렸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스스로의 선택을 믿은 것이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신가요?

스페셜티 커피를 찾아 마실 정도는 아니지만, 저에게 커피는 굉장히 친숙한 음료예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게 커피니까요. 그렇지만 커피가 너무 좋아서 카페를 차렸다는 이야기는 저한테는 해당되지 않아요.

F&B 브랜드 컨설팅을 하면서도 커피는 늘 가장 어려운 분야였어요. 종이 한 장 차이로 성공과 실패가 갈릴 수 있는 곳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레드오션이라고 표현하지만, 저는 그 안에서도 가능성을 봤어요. HR, 그러니까 사람에 제대로 투자하고 좋은 인력을 중심에 두면 분명히 확장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죠.





대표님께서 계속 강조하신 HR에 좀 더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한 10년 전쯤,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무너졌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그때 정말 많은 걸 잃었거든요. 그러면서 사람의 본질적인 중요성을 많이 느꼈어요. 단순히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데려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와 어떻게 맞고, 어떻게 소통하고, 의견을 어떻게 주고받느냐가 핵심이라는 걸 깨달았죠. 아무리 훌륭한 인재를 데려와도 대표가 자기 방식대로 밀어붙이면, 그 인재는 10%도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해요. 비즈니스 아이디어나 콘텐츠, 기술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그걸 실행하는 모든 과정은 사람이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사람 중심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거고요.



이 공간에서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는 어디인가요?

아무래도 바(Bar) 공간에 가장 애정이 많이 가요. 백현점도 그렇고 이곳도 마찬가지예요. 디켄트는 바 공간을 특히 크게 만들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이 공간의 진짜 주인공은 바리스타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이 중심에 있어야 공간도, 브랜드도 살아난다고 믿어요. 그래서 바 공간 안에서 더 많은 이야기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간 공간이기도 해서…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죠. 카페의 얼굴 같은 곳이니까요.





카페를 운영하면서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순간이 있었을 거 같아요.

그런 순간은 의외로 자주 찾아와요. 아마도 이쪽 분야에서 사업하시는 분들이라면 다 공감하실 텐데, 주방이나 바 안에서 매장을 바라보다 보면 손님들이 공간을 즐기고, 음료를 마시면서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게 돼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 일을 하길 진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었던 게 순간 사라지게 되죠. 마치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떼창을 들을 때 벅차오르는 그런 기분이랄까요. 내 공간에서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이 일이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공간을 운영하시는 분들에게 전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요?

공간을 꾸리는 사람이 단순한 운영자가 아니라, 그 공간 자체의 얼굴이고 브랜드라는 사실을 꼭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전문가에게 디자인을 맡긴다 하더라도 본인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담아낸 생각이 최대한 반영되어야 해요.

단순히 예쁘게, 혹은 싸게만 공간을 만들려는 접근으로 좋은 결과가 나온 경우를 저는 거의 보지 못했어요.

물론 규모나 지향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결국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공간은 그 사람 혹은 브랜드 자체가 드러나야 색깔이 분명해지고, 시간이 지나도 지속 가능한 공간(브랜드)으로 남을 수 있다고 믿어요.




**해당 인터뷰는 금전적 대가를 받은 광고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아래 사이트에서 인터뷰에 수록되지 않은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hwangchanho.com/dekentgrayw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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