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치 Apr 12. 2018

그리운 나의 유년


내 유년시절을 떠올려본다.

세 가족의 생계를 떠안은 삼십대 초반의 엄마는 일에 너무 찌들어서, 집에 있을땐 거의 잠만 잤다. 엄마가 코 끝까지 이불을 덮고 자고있으면 나는 그 옆에 혼자 앉아 소꿉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벽을 보고 누운 엄마의 등은 무척 높아서, 나는 그 굴곡진 선을 뒷산으로 삼아 집을 짓고 가정을 꾸렸다. 그 집의 부모님도 너무 바빠서 나는 여전히 혼자였지만, 매일같이 찾아오는 가상의 친구가 있어 하루종일 함께 놀았다.



이따금씩 엄마가 몸을 뒤척이면 우리는 그것을 태풍이라고 불렀다. 태풍은 예고없이 반복적으로 찾아와 살림살이를 모두 날려버리곤 했지만, 나도 친구도 별 불만은 없었다. 한 차례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비버처럼 다시, 또 다시 집을 짓고 놀았다.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 친구였다.

엄마가 잠에서 깨면 친구는 인사도 없이 돌아갔다. 내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면, 아직 잠에 취한 엄마가 나를 힘주어 안았다. 다시 고롱고롱 코 고는 소리가 나고, 나를 안은 팔에 힘이 풀리면, 늘어진 팔을 들어 다시 내 어깨를 감쌌다. 몸을 짓누르는 그 무게에 숨이 막혀도, 그 감촉과 냄새가 너무 좋아서 언제까지고 마냥 그 안에 갇혀있고 싶었다.

그때의 내가
외톨이였는지
슬펐는지
행복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근무시간중의 ‘딴 짓’을 생각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